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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Dec 06. 2024

'정치'가 아니라 '가치'

"정치 문제 다루지 마세요"라는 부모님들에게

아이들과 토론 학습을 하다 보면 간혹 학부모님들로부터 "정치는 논제로 다루지 말아 주세요"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역사는 왜 배워야 하는가?>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적인가?> 정도의 기본 개념적, 원론적 수준은 괜찮은데 민감한 현안을 다루지 말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의 정치 참여>같은 것인데요, 토론의 특성상 양쪽 입장을 다 다루어야 하므로 '청소년 정치 참여의 장점 혹은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일부 부모님들은 그런 논의 자체를 불편해하는 겁니다. 

부모님들이 '걱정'하면서 많이 쓰는 표현이 '사상 주입'이나 '공부해야 할 시기' 등인데요, 의미를 짚어보면 "공부해야 할 시기에 불필요한 학습과 무관한 정치 얘기를 하지 말아 달라"는 것, 그리고 "특정 정치사상에 대해 주입하면 안 된다" 등으로 해석됩니다. 

그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많지만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합니다. 관계의 특성상 그런 것도 있고, 필자 쪽에서는 '설득'이라고 생각하는 표현이 그분들 입장에서는 '고집'이라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아이와 정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합니다. 국내 정치는 물론이고 글로벌 정세에 대해서도 현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빼놓지 않고 다 이야기합니다. 아이가 만 14세가 넘어 생각이 성숙한 측면도 있지만 그게 가능한 이유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정환경 특성도 있었을 겁니다. 남편도 저도 둘 다 기자로 일했기 때문에 분야를 막론하고 뉴스를 챙겨보는 것이 빼놓을 수없는 하루의 일과였고, 대화 속에 정치 이슈가 섞이는 건 당연했습니다. 물론 어린아이 앞에서 민감한 이슈를 격렬하게 가감 없이 논하지는 않았지만, 엄마 아빠가 일상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대화 소재로 삼는 것을 듣고 보면서 자란 아이는 정치 이슈가 사회나 경제, 문화, 혹은 우리 생활에 관한 문제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을 수밖에 없었겠죠. 

아이와 대화가 통화가 시작한 후로는 정치 소재로 대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다루었고, 아이와 시간을 정해놓고 했던 '엄마표 토론' 시간에도 정치 분야의 뉴스들을 종종 논제로 택했습니다. 최근에만 하더라도 쏟아지고 있는 국내 이슈는 말할 것도 없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의 문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동 관련 문제 등도 빼놓지 않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먼저 뉴스를 '가족 단톡방'에 공유하며 토론을 제기하는 상황도 많죠. 


이 부분에서 제가 생각하는 '정치 이슈'가 "정치를 다루지 말아 달라"라고 하시는 부모님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피부로 와닿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정국을 휩쓸고 있는 현안을 통해 비교해 보자면,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정치 이슈는 '계엄사태'가 될 것이고, 제가 생각하는 정치 이슈란 그보다 넓은 의미로 '대통령의 역할', '정의란 무엇인가' 등이 되겠네요.


다시 말해, 아이들과의 토론에서 대화에서 다루는 정치 문제란 것이 비난하고, 어느 한쪽 편을 들고, 그래서 부모님들이 걱정하는 대로 '특정 사상을 주입하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들이 바르게 생각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질 줄 알며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필요한 비판적 사고와 바른 판단, 나아가 세상에 대한 시각을 키우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형성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물론, 전제가 있습니다. 함께 대화하는 상대가 열린 마음이라야 하고, 객관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아이를 완전히 동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끌고 가려는' 마음이 없어야겠지요.)


저는 이것을 '가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회의 모든 현안이 그러하듯이 아니 우리 주변의 사소한 일상을 소재로 한 대화나 토론과 마찬가지로 정치를 매개로 한 대화 및 토론은 결국 '가치'를 만드는 소중하고 귀한 시간입니다.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정치는 후진국'이라는 표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공감하는 말입니다. 싸움을 일삼는 국회, 서로 비난하기 바쁘고, 타협과 협력이 없는 정치권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정치 교육, 아니 가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 입시를 목표로 한 공부만이 '공부'는 아닙니다. 가치 교육은 우리가 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정말로 필요한 진짜 공부라 할 수 있어요. 부모님들이 걱정하는 '특정 사상 주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리미리 대화를 통해 교육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키워줘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아이들은 '생각하는 힘'이 있습니다. 질문하고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생각하는 힘이 더 단단해질 것이고 강한 내면도 갖게 될 겁니다. 그런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그런 아이들이 미래의 주역이 될 때 우리도 '정치 후진국'을 벗어나 보다 성숙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하고 타협할 것이며 선동이나 자극이 아닌 조언하고 설득하는 어른이 많아질 테니까요. 


혹여, 지금의 정치 상황이 더해져, 아이들과 정치 문제를 다루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더 늘어날까 염려하는 마음에 다시 말씀드립니다. "정치"가 아니라 "가치"입니다, 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현재 상황이 아이들과 '가치' 교육을 하기에 좋은 기회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끝으로,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위즈덤하우스) 서문에 소개된 마이클 셔머의 에세이 '잘못된 사실을 믿는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 중 일부 글을 공유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아이들과 정치 포함 혹시 껄끄럽다고 생각하는 논제를 두고 대화할 때 이런 태도를 가져보시길 하는 마음과,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제 아이와, 또 다른 아이들과 토론하고 수업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결국 '심지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도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마음과 생각 체계를 가진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첫째, 소통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둘째, 토론하되 공격하지는 말아야 한다. 감정에 호소하거나 히틀러 연관 짓기(예를 들어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였다며 채식주의를 폄훼하는 일)는 금물이다. 셋째,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넷째,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다섯째, 상대방이 그런 의견을 가지게 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여섯째, 사실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 커버이미지 :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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