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쓰고 난 나머지의 가시방석

by 애동


다 쓰고 난 나머지의 가시방석


'잉여의 가시방석'이라는 제목을 정하여 놓고는

가능한 많은 궁금증과 관심 환기와 그리고 또

물음표 세개쯤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외도를 저지르고자

'다 쓰고 난 나머지'로 고쳐 표현하고는

비로소 나는 이단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세상 참 많은 이단은

외로움에 못 견뎌

외도해보려는 불쌍한 사람들인지도 몰라


까지 쓰고 또 이단에 대해 무수한 생각을 써내려 가고는

'다 쓰고 난 나머지'의 범주로 되돌아 가고자

모든 글을 지웠다


하여 '다 쓰고 난 나머지'라는 범주

가장 한 가운데에 설 법할만한 주장을

여기 지금 최초로 해보자면


'잉여는 불쌍하다'


왜냐하면

잉여는 할 일이 없고,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없고, 또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또 그런데 또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고, 무언가를 하지 않느냐는 무수한 응답할 수 없는 물음에 답하고자 애쓰길 바라여져야 하고, 또 기타 등등.. 하여간 잉여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사람'이 앉을 자리가 너무 따갑기 때문이다

라는 시시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오히려 '잉여'가 불쌍한 탓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세상 사람들은 '잉여'를 엄청 많이 갈망하면서도

막상 '잉여'가 되어버리길 꺼려하고

오히려 '잉여'를 무시하고 시덥잖게 보고 골려주기를 좋아하는 탓에

이 '잉여'라는 말의 설 자리를 도무지 알 수 없는 탓이다


이를테면 만약 내가

'너 잉여 할래, 안 할래?'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 '잉여 할래', '잉여 안 할래'하고

쉬이 답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어느 위치에도 쉽게 서기 싫은 느낌

잉여하는 것과 잉여하지 않는 것

두 자리 모두 뭔가 괜한 무게와 부담이 느껴진다

-이러면 내가 너무 무책임한가?ㅎㅎ-


또 이를테면 내 친구들 중에는

갓, 혹은 조금은 덜 갓(조금 더 오래되었다는 소리다) 직장인이 되어버린

귀여운 사회 초년생 친구들이 꽤 많다면 많다

한데 그 친구들은 직장생활 한탄하기를 꽤나도 좋아하는 친구들 같아 보여

심지어는 어딘지 '잉여'를 부러워하는 느낌마저 드는데

요것이 또 참 비겁하다


그 비겁한 '탓'을 살펴보자면

개중에 참 여럿은 '잉여' 시절

바쁘고 멋진 직장생활을 무척이나 바라왔고

자신의 '잉여로움'을 쉬이 마땅히 여기질 못했던 인물들이었다

물론 바쁘니 좀 쉬고 싶다는 소리일 테지만

그래도 '잉여'가 부럽다는 둥의 소리는

'잉여'를 너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보는 너무한 너무함이다

-라고 말하는 건 또 나의 너무한 너무함이긴 하다ㅎㅎ


아무튼간에 '잉여'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이 너무 조삼모사하다는 소리

하여 '잉여'는 좋은 녀석이 될 길도, 나쁜 녀석이 될 길도

쉽게 허락되질 않아 진퇴양난의 '고립잉여'가 되어버리는 셈인데

이 탓에 '잉여'의 설 자리가 너무 좁다

하여 그 좁은 자리마저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게 맞나

싶은 가시방석 위에 앉은 느낌

하여 잉여가 조금 더 가치중립적일 수 있다면 좋겠다

잉여는 그냥 잉여로서.


하여 잉여가 너무 불쌍하고

고로 '잉여는 불쌍하다'


+

이제는 지워버린 이단에 관한 무수한 이야기


....

그러고 보면 또

이제껏 살아오면서 스쳐지나온

수 많은 이단

-이라고까지 말하면 참 미안할 이단들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 특이한 사람들은

따돌림 받기에 참 좋은 조건의 인재들이었던 것도 같다


개중엔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 남들을 흉보는 외계어를 써내려갔던 친구도 있었고

자기 소신을 지키고자 분위기에 타협하지 못해 요상한 꼴이 되어버린 친구도 있었다


하여간 참 다양한 이단들이 있었는데

재미난 것은 이단들의 증세가

-'증세'라는 표현을 한 것은 非이단들이 바라보는 이단들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탓이다-

호전되는 일보다 악화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인데

그 까닭에 대해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단은 너무 외로운 탓이고 좀더 관심을 끌고 싶었던 까닭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아닌 까닭도 많을테지만-

하여간 그런 이단들에게,

그런 이단의 '증세'가 非이단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지기에,

세상은 이미 너무 꽉 짜여져 있어

이단은 자꾸만 더 이단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느낌


무슨 말인가 하면

세상엔 非이단의 자리가 이미 모자란 상태라 이단적인 것이 非이단적인 것이 되려면 은행에서와 같은 대기번호 같은 게 필요한데, 그 번호는 이미 세자리수를 넘어 있는 느낌이랄까

세자리수는 기다리기에 이미 너무 많은 수니까


그래서 자꾸만 더욱 더 이단이 되어버린 느낌


하여간 이단이 非이단의 범주로 파고들기엔 이미 이단도, 非이단도 너무 많고

하여 이단이 외로운 꼴이 되어버리기란 참 쉬운 일인 것 같다


하여 이단은 슬프다



슬픔과 불쌍함과 노여움의 글 끝


-2016년 과거, 어떤 생각들 중에서 하나의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카페 다니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