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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섬 Jul 10. 2023

로펌 다니는 엄마들의 대화

어디나 육아는 다 똑같습니다

'선임님, 다음 주 월요일 점심 약속 있나요?'


네이버 리빙의 '미니멀 인테리어'를 볼 틈이 없이 바쁘던 수요일, 모니터 오른쪽 하단의 알림이 떴다.

캘린더를 한번 살펴보고 그 날짜에 점심약속이 없는 걸 확인하고 바로 회신을 한다. 다음 주 월요일 날씨가 어떨지 얘기하고, 그날 오전 중에 메뉴를 정하기로 한다.


'저 저번에 구했다던 이모님 그만두셨습니다 ㅠㅠ 그럼 다음 주에 뵈어요'


할 말은 너무나 많지만 그러자는 대답을 한 채 창을 닫는다. 잠깐의 수다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와 다른 부서의 P선임님은 함께 회사 근처에 '심심하고 깔끔한' 냉면집으로 향했다. 더운 날과 육아 이야기로 지끈지끈해질 머리를 식혀줄 만한 메뉴로 더할 나위가 없다. 그날따라 웨이팅이 너무 많았지만 키오스크에 성인 2명 등록을 해놓고 테라스에 앉았다. 앉기가 무섭게 시작된 육아 토크. P선임님과는 사실 입사시기의 차이도 있고, 부서도 달라서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의 조산으로 인해 아이들의 생일이 한 달도 차이가 안나는 친구가 되어서(심지어 둘 다 1월생이라 완전 친구) 서로 ‘애엄마 토크’를 하기가 너무 편하고 즐거워져서 거의 2주, 한 달에 한번 밥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개월 수가 비슷한 아이엄마끼리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비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P선임님의 아들은 그렇고, 내 딸은 이렇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을 받았고, 서로서로 공감도 하고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게 되면서, 점심시간이 1시간뿐이라는 게 아쉽기까지 했다.


오늘 점심의 육아토크 주제는 <세상에 이런 이모님이>, <어린이집에서의 우리 아이>였다.

P선임님은 1년을 가까이 함께 계시던 이모님이 개인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셨다고 했다. 처음 복직을 앞두고 이모님을 구했던 때와 같이, 공고를 올리고, 면접을 봤는데 정말 희한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에피소드를 여기에 남기기엔 개인적이라 부적절할 것 같아서 적지 않을 예정이지만, 내가 뜨악한 반응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그게 심지어 좋은 분이었다고 P선임님은 판단을 했지만, 여러 고민 끝에 결국 작별을 고했다고 했다. 지금은 이모님을 구하다 지쳐 결국 남편과 함께 출퇴근시간을 조정하여 등하원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가끔 이모님이 일정이 생기시거나, 휴가를 가시면 내가 1시간 일찍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게 되는데, 말이 1시간이지 그날 일어나는 시간부터, 출근준비와 등원준비를 동시에 해야 간신히 가능한 시간이다. 나는 복직 시기와 새 학기 시기를 어린이집과 상담하다 새 학기에 맞춰서 등원시키되, 적응기간을 오래 갖자고 말씀하신 어린이집 원장님과 선생님 뜻대로 아이가 14개월 때 기관에 보냈다. 첫 해에는 너무나 적응을 잘했고, 두 돌을 지나 반이 바뀌었을 때도 꽤 적응을 잘했다. 그러나 올해 5월, 내가 어쩌다 한번 등원을 할 때마다 ‘어린이집 가기 싫어’ ‘엄마랑 같이 있을래’ ‘엄마 회사 가지 마’ 하면서 입이 트여서 마음이 더 아픈 때를 겪었다. 다행히 P선임의 아이는 그런 것 없이 엄마가 등원을 해도 잘 간다고 했다. 그래도 이모님의 비용은 아끼게 되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오래도록 있게 하는 것이 참 안타까운 현실이긴 했다.


지금까지도 엄마들 사이에 교육을 말할 때 ‘맹모삼천지교’를 언급하지만, 동네에 사시는 좋은 이모님을 만나면 이사도 못 가는 게 요즘 현실이다. 나는 올해 5월, 조금이라도 친정과 가깝게, 그리고 남편의 회사와도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가고자 했다. 그러나 가장 밟히는 건 이모님이었다. 지금 이모님과 만난 지도 1년이 넘었는데, 너무나 좋은 성품의 이모님이시고 아이도 엄청 잘 따른다. 무엇보다 이모님께서도 워킹맘이셨어서, 나를 이해해 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같이 울기도 해 주셨다. 그래서 인연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쭉 봐주셨으면 해서, 이사를 쉽게 결정하진 못했다. 그게 사실 동네를 옮기지 않기도 마음을 먹게 된 계기다. 나중에는 아이의 성향에 따라 결정하겠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등하원이 필요할 것 같다.


P선임님과 나눈 어린이집에서의 우리 아이들은 다 똑같아서 공감대가 많았다. 우리 아이는 타고난 기질이 워낙 자기 주도가 강하고 성취욕이 높고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며 성격이 급한 아이라,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에는 손이나 입이 먼저 나가서 어린이집에서 전화 오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너무나 무섭고 트라우마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주변에 물어보거나 들어보면 이런 일이 다들 없고, 오히려 피해자인 경우가 있기는 해서 혼자만 끙끙 앓았다. 정말 심하게 친구를 다치게 했을 때에는 상대방 부모님께 편지도 쓰고, 약도 사서 보내고, 전화로 사과까지 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 원장님, 친구들, 어른들이 모두 성장과정이라고 달래주셨지만 나의 마음은 괜히 학교폭력 가해자의 부모가 된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그런데 P선임은 자기는 집에 찾아가기까지 해 봤다며 나를 위로해 줬다. 물론 아는 사이라 그랬다고는 하지만, 집에까지 찾아간 용기가 대단했다. 난 사실 편지를 쓰기에도, 전화를 하기에도 너무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로펌에 다니다 보니, 바로 같은 건물에 학교폭력위원회 위원인 변호사님이 계신다. 업무를 하다 기회가 닿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당시는 학교폭력이 꽤나 이슈가 되던 때였다. 한창 속으로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대처를 하지 생각을 하면서 여러 사례들을 듣고 있었는데, 변호사님께서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순간은 한순간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아이가 한창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혼나는 상황이 많았어서 좀 위축되어 있던 시기에, 나는 어린이집 일일 교사로 열린 어린이집에 참여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어린이집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21년생 아이들이 하루동안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어감이 세서 그렇지, 그냥 장난감 갖고 놀고 있으면 뺏어서 가지고 노는 것, 뺏기는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성장과정 속에 있는 아이들이었다. 누군가를 괴롭혀야지 하는 의도가 있는 모습도 아니고, 우연으로 서로 원하는 게 같아서 투닥거리며 다투기도 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나면 울기도 하고, 즐거우면 웃기도 하는 그냥 모두 보통의 아이들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말씀으로 훈육과 교육이 되면서 다들 가르침을 받고 성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들로부터 다행이게도 내가 대처와 교육을 잘하고 있단 이야기도 듣고, 아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분야에 더 주도적이게 키워주는 방법도 배웠다. 이 경험으로 나는 ‘우리 아이는 평범한 아이구나’, ‘내가 안 좋은 부모가 아니구나’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와 영상노출에 관한 이야기도 했는데, 이건 할 얘기도 많고 해서 다음 이야기에 적어보려고 한다.


로펌에 다니는 엄마, 하면 어떤 이미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출산 후 아이 백일 즈음에, 부모님께 철없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 엄마 로펌 다녀! 우리 외할아버지 법원에 계셔!’라고 말하는 배짱을 가지게 하면 어떠냐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그건 아이를 아주 나쁘게 키우는 지름길이라고 하셨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하고, 부모의 역할은 그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하셨다. 요즘 엄마아빠들이 다 큰 자식의 회사에까지 전화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황당했는데, 내가 철없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자식도 나도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아이도 성장이 필요하듯, 부모도 성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로펌에 다니는 엄마들도 다 똑같은 육아를 통해 성장하는 엄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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