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에 부쳐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 영화 중 제게 가장 큰 감정적인 파장을 준 작품입니다. 그간 박찬욱 감독 영화 세계의 미학이었던 폐곡선 같은 이야기 구조, 아름다운 미술, 좋은 연기는 물론이고 새로운 연출과 시도가 담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영화이자, 박찬욱 영화 세계 중에서도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이기에 영화에 대한 헌사를 남겨보려 합니다.
결말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영화의 주제를 다룰 수 없기에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헤어질 결심>을 보신 분들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영화는 기도수라는 남자의 살인사건을 축으로 형사인 해준(박해일)과 용의자이자 기도수의 아내인 서래(탕웨이)의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두 사람의 배우자들과 동료 등 주변인들과의 관계, 각자의 환경은 유사한 점과 상이한 점이 있습니다. 이 두 요소는 그들의 관계를 교착시키는데요.
첫 번째, 두 사람의 배우자들은 두 사람에 대한 강한 소유욕을 가졌다는 환경적 유사성이 있습니다.
서래의 남편은 물건에 주기를 하는 것처럼 아내의 몸에 주기를 하고, 해준의 아내는 출하 검사를 하듯 결혼 기간과 성관계 횟수를 카운트합니다. 숙제 검사 같은 관계를 요구하는 아내의 요청에 기계적이고 감흥 없이 임하는 해준의 처지는 원치 않는 등산을 강요받는 서래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내에 대한 물리적 폭력과 남편에 대한 성적 잣대는 모두 '통제를 위한 집착'이라는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두 사람의 신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밀입국자인 서래는 그녀의 고된 상황을 잘 들어준 기도수를 남편으로 맞았고, 통제와 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남편 역시 미모의 외국인인 서래의 신분을 대외적인 접대 목적으로 활용할 뿐이지요. 반면 해준은 형사라는 직업적 자부심과 안정적인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남편이라는 외력에 의존해 살아가지만 그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서래에게 있어 해준은 성실한 사회 안전망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세 번째, 두 사람은 유사한 세계관과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각의 신분과 처지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품고 살아가는 핵심 가치는 자부심입니다. 해준은 집요하게 사건에 파고들어 해결해내고야 마는 형사로서의 신의성실이 삶의 원동력입니다. 아내조차 피와 시체가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비아냥에서 그의 강한 직업윤리를 알 수 있지요.
서래는 외조부가 만주 독립군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한국에 왔습니다. 비록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외조부의 유산인 호미산을 본인의 산이라 생각하며, 언제나 꼿꼿한 자세로 자부심을 지켜나가고 있지요. 서래의 핏줄 관련한 설정으로 외조부는 그녀의 어머니를 입양한지라 서래는 온전한 중국인이라고 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인 조상의 핏줄로 이어져 있다는 설정을 탈피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이런 그들의 상황적 유사성과 차이점, 동질성은 하나로 얽혀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매력을 느끼며 사랑에 이르도록 합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미인으로 생각하는) 서래의 매력과 살인 용의자로서의 의심은 해준의 마음의 인력과 척력으로 긴장감을 가져다주고, 그녀를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쌓이는 연민과 동질감은 긴장을 풀고 호감으로 이끄는 에너지로 작용합니다. 서래 역시 본인을 의심하는 형사로서의 거리감과 사려 깊으면서도 저돌적으로 범인을 잡는 믿음직한 해준의 끌림 사이에서 사랑의 행보로 접어들게 됩니다.
밀어내는 힘과 끌리는 힘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의 불씨는 <아가씨>에서 탄생한 사랑의 기원과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헤어질 결심>과 그간의 작품들과의 두드러진 차이는 영화 전반에 안개가 낀듯한 연출과 정서입니다.
영화는 다층적인 플롯으로 구비구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캐릭터들의 행동과 마음, 진행되는 이야기들 모두에 희미한 안개가 씌워진 듯 모든 것이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해준과 서래가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면처럼 아주 직접적인 설렘을 다루는 뛰어난 로맨스 영화로서의 연출도 있지만(박찬욱 감독이 작정하면 로맨틱 코미디도 잘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시퀀스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불확실한 지점들에 확실한 판단의 단초를 제공하거나 결정해주지 않습니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비중이 큰 배역도 많지만 모든 조연 캐릭터들은 서래와 해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 요인입니다. 동료들, 심지어 배우자들과의 존재와 관계들도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서로에게 다가가고 알아가기 위한 사건적 장치들일 뿐이지요. 영화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다가가고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가는 두 사람만의 서사에만 집중하고 영화의 장치들을 헌신한 멜로입니다.
그간 박찬욱 영화 세계에서 강한 상징성과 주체적인 매력의 힘을 가졌던 미술은 여전히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그간 영화들과는 달리 강한 자기주장 없이 해준과 서래 두 사람의 서사를 위해 완벽하게 지원하는 것 같습니다. 철두철미한 수사관인 해준의 성격을 보여주는 비스포크 수트, 알듯 말듯한 서래의 속내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서래의 드레스, 서래가 직접 쓰고 그린 산해경 등 영화의 미술은 기존 박찬욱 영화 세계와 다를 바 없이 치밀하고 아름답지만, 직접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한 층 아래에서 두 사람의 성격과 사건을 대변해주는 조명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명조차 자기주장이 확실해 한 장면, 한 장면마다 날카로움이 가득했던 <박쥐> 같은 작품과는 달리 편안한(?) 느낌이랄까요. 덕분에 관객은 두 사람의 감정에 더 깊이 몰입해 감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서래는 <아가씨>의 숙희가 가진 순수함과 행동력, <박쥐>의 태주가 가진 욕망을 모두 갖고 사건을 주도하는 인물입니다. 상대방이 안락사를 요구하더라도 그 사람의 고통을 끝내주길 바라는 열망이 더 큰 서래의 선택에는 도덕적 딜레마의 자리가 없습니다. 본인을 물리적으로 억압하거나 표면적인 관계로만 대하는 남편에게 최후를 선사하는 과감한 행동들에도 도덕적 고려는 일단 뒷전이지요. 이포로 떠나간 해준을 만나기 위해 거처를 옮겨야만 한다고 남편의 선택지를 몰아가고, 먼발치에서 해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 알람 경보를 울리는 행위들은 그녀의 순수함과 욕망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는 크게 부산에서의 사건 중심의 1부와 이포에서의 사건 중심의 2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는 해준의 시선이 관객의 시각인 반면 2부는 해준과 서래의 모습 모두를 관객이 바라봅니다. 1부의 사건은 산에서 벌어지고, 2부는 바다에서 막을 내립니다. 산에서 바다로 하강하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서 미술 얘기를 잠깐 했지만, 제게 가장 인상 깊은 소품은 서래의 드레스입니다. 파란색 같기도 하고 초록색 같기도 해 영화 상에서도 등장인물 간에도 그 묘사가 각기 다른 서래의 드레스.
<박쥐>에서 태주가 입었던 드레스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순수한 욕망에 빠질수록 짙어졌던 태주의 파란 드레스는 어쩐지 서래의 행보와도 맞닿아있네요.
서래의 드레스 색깔 중 녹색은 산을, 파란색은 바다를 함의하는 건 아닐까 합니다. 영화에서 산과 바다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으로 대립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산에서 자행한 살해로 시작해 바다에 묻히는 여정의 회귀 구조를 드레스에 담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순수하지만 과격한 행동파인 서래가 택한 영원에 이르는 시퀀스는 영화의 백미이자 안타까운 마음의 정수입니다.
관객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이포 바닷가로 향하는 서래와 그녀를 쫓는 해준을 동시에 바라보게 됩니다. 중국어로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라고 말하는 서래의 말을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는 해준의 난감함,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습니까"라는 해준의 말에 크게 동요하는 서래의 모습은 이 영화의 종막에 두 사람이 해로를 맞을지 파국을 맞을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스로를 어딘지 알 수 없는 모래 구덩이에 파묻은 서래, 이미 모래와 파도가 서래를 삼킨 뒤에야 서래가 남긴 말의 의미를 깨닫고 하염없이 그녀를 찾는 해준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은 극대화됩니다. 이미 관객은 해준의 시점을 통해 서래에 대한 연정을 품었고, 전지적 시점을 통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가려 했던 노력과 어긋남을 지켜봤기 때문에 감정적인 동기화가 깊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결국 이포 바닷가에서 두 사람의 파국을 위해 이야기를 쌓아왔고,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이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송창식과 정훈희의 안개를 듣고 싶기도 했지만, 크레딧이 다 끝나고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감흥을 받았습니다.
이 깊고 강력한 감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그 서래의 선택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합니다. 카메라는 그저 서래의 손을 비출 뿐, 서래의 마지막 표정, 시야 같은 직접적인 표현이 영화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올드보이>의 우진,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 <박쥐>의 상현과 태주... 이전 박찬욱 영화 세계는 집요하게 캐릭터의 최후를 직시하고야 말았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차오르는 물에 서래가 잠기는 과정은 생략된 채 꽂혀있는 막대의 흔적만 남아 '아 이미 저 자리에 묻혀버리고 말았구나'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와 본인 발 밑에 있는지도 모르고 처절하게 서래를 찾는 해준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상세히 묘사하지 않은 서래의 마지막과 몰아치는 파도의 대비를 담은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연출로 서래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더 깊어진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서래의 최후는 한 편으로는 속죄의 모티브로 보이기도 합니다. 지독한 순수함과 행동력의 사각에 있던 윤리적 과오들은 중국과 한국 양국에서 그녀를 결박하는 상황이지요. 계속 새로운 배우자와의 삶을 맞으며 과거를 돌파해왔던 그녀의 실체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형사인 해준이 붕괴된 딜레마에 핵심이기에 그에 대한 속죄로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지점에서 <박쥐>의 종막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감상하는 사람마다 서래의 마지막 선택이 어떤 동기를 지녔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공통적으로 품지 않을까 합니다.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정훈희의 <안개>의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라는 가사는 해준과 관객 모두의 마음이 아닐까요.
영화 내내 관객의 마음을 빼앗아 이포 해안가의 안타까움의 서사로 이끈 것은 서래 역할을 맡은 탕웨이라는 배우의 마력입니다. 탕웨이는 폭력과 치정, 죽음과 이별이 엮인 이 영화에 생기와 감정을 부여합니다.
1부에서는 해준이 어떤 속내를 감추고 있는지 통 알 수 없고, 일견 비정상적인 행동이 가득한 그녀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래를 연기한 탕웨이가 가진 특유의 기품이 극적 당위성을 확보합니다. 정서경 작가는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탕웨이가 아니면 멜로를 못 할 것 같다"라고 표현했는데(우울할 때 예쁜 존재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탕웨이 사진을 자주 보신다고 합니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0489), 탕웨이가 연기하는 서래의 매력은 이 영화의 바퀴를 굴리도록 하는 원동력과 같습니다. 남편 살해라는 끔찍한 혐의를 받고 있으면서 노인들에겐 다정하고, 때로는 당당하면서도 귀엽고 사려 깊은 모습을 시시각각 보여주는 그녀에게 해준은 더 깊이 빠져들게 되고, 관객 또한 해준과 같은 심상으로 영화의 흐름을 함께 하게 됩니다. 정서경 작가의 캐스팅은 완벽했네요.
처음 본 용의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형사, 전 남편과의 석연치 않은 사별에도 재혼을 택하는 두 번째 남편, 다가갈수록 의심을 거두게 되고 관심이 깊어지는 해준의 마음과 같은 설정들은 짧은 시퀀스만으로는 당위성을 얻거나 잘 풀어내기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설정들은 발랄하지만 기품 있고, 위험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알 수 없이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닌 탕웨이의 존재 자체에 의존해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조심조심 꾹꾹 눌러 말하는 한국어와 유창하고 단단한 힘이 있는 중국어의 낙차는 관객들에게 그녀에 대한 호기심과 놀라움을 안겨주는 청각적인 경험까지 제공해줍니다.
1부에서는 관객 또한 서래에게 빠져들도록 관객의 시야로서의 역할을 하고, 2부에서는 관객과 시점을 달리하며 서래의 최후를 알지 못한 채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드는 주인공의 역할을 수행하는 박해일의 연기는 영화의 반석과 같습니다. 탕웨이의 존재가 영화에 생기와 감흥을 주었다면 박해일은 영화가 품위 있고 무게감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연수(김신영)와 임호신(박용우) 캐릭터가 주는 코믹함과 경박함, 정안(이정현)과의 권태롭고 불편한 관계는 자칫 전형적이거나 본 작의 톤과 맞지 않아 튈 수 있는 요소일 수 있는데 박해일의 연기가 무게중심을 묵직하게 잡아주어 흩날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중하면서도 명석하면서도 다소 경직된 모습과 설레는 모습, 현실적인 말투와 문어체의 대사를 오고 가는 박해일의 연기 덕분에 해준이라는 캐릭터가 전형적이지 않은 매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헤어질 결심 각본> 출간 인터뷰에서 정서경 작가는 "<헤어질 결심>은 지금까지 영화 중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의 거리가 가장 먼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연출의 힘과 편집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와 박해일, 두 사람의 연기로 인해 영화가 시나리오와는 다른 지점으로 잘 완성됐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올해 가장 빛나는 존재감과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기도 하지만 연기 또한 놓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헤어질 결심>의 장면들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이 바뀌기도 합니다. 서래는 어느 시점에 최후를 결심했을까, 해준의 삶은 이제 어떻게 될까, 정안은 언제부터 외도를 한 것일까, 임호신은 서래가 아니더라도 결국 저렇게 될 운명이었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참 명확하고 뚜렷한 영화인 것도 같고, 저렇게 생각하면 많은 부분들이 모호하기도 합니다. 볼 때마다 인상이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안타까운 영화를 오래오래 곁에 두고 또 다른 생각에 젖어들고 싶습니다.
'22년 엔데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많은 자본이 투입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했지만 기대만큼 큰 흥행과 좋은 평가를 얻은 작품이 많지가 않았습니다. <헤어질 결심> 또한 초반부터 흥행의 다소 어려움이 있었는데, N차 관람객들과 입소문의 힘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영화를 접한 관객들에게는 깊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영화 시장의 환경이 녹록지만은 않아 앞으로도 이처럼 좋은 영화가 계속 많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영화에 계속 성원을 해나가며 토양을 다져나가는 것이 관객의 역할이겠지요.
마침 <헤어질 결심 각본>도 출간되었습니다. 본 작을 사랑하는 분들은 각본과 영화를 비교하며 한층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겠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헤어질 결심>을 보고 이 영화에 대한 헌사와 감흥을 주변에 나눴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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