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stotle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옮김, 길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철학자 3명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이지만, 소크라테스의 저작은 전해지지 않고 플라톤의 철학이 소크라테스의 것을 상당수 반영하고 있으므로 크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두 철학자가 현대에 전해지는 주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다. 플라톤은 <국가>와 <법률>로 대표되는 도덕철학, 정치철학에 관한 책을 남겼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 대표되는 도덕철학과 <정치학>으로 대표되는 정치철학에 관한 책을 남겼다. 여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대한 논의를 해 보려고 한다. <정치학>의 내용 자체에 대한 논의를 하기보다는 그가 제시한 내용 중 주의 깊게 볼 만한 내용과 비판할 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말미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조건들을 종합한 후 이에 따르는 최상의 정치체제를 논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내가 <정치학>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가 자신 있게 최상의 정치체제를 논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플라톤의 정치체제는 분명 이상적인 면에서는 뛰어났지만, 도저히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기는 어렵고, 그것을 목표로 두고 정치체제를 변혁해 나가는 것도 큰 부작용이 따를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한계를 느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플라톤이 제시한 정치체제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제시한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큰 틀에서 보면 덕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귀족정의 체제 일부와 민주정의 체제 일부를 가져온 형태를 띠고 있었고, 보다 현실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현실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과 이상적 정치체제에 대한 구체적 논리 전개 방식은 그의 다른 저서들과 유사하다. 그는 통념들을 제시하고 이것들에 나타나는 모순들과 오류들을 제거하고 자기 생각을 세우지만, 통념들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많은 사람이 인식하는 현실을 배제하는 것이 진리에서 멀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적 탐구를 통해 자기 생각을 전개해 나갔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논증 방식을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탐구한 2000년 전 폴리스들의 정치체제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이나, 현대의 국가들에서 확립된 정치체제들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누가 지배해야만 하는가의 문제와 어떤 부분에서 평등한 것이 곧 모든 면에서 평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또는 어떤 부분에서 불평등한 것이 모든 면에서 불평등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의 문제들은 아직도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제시한 경험적 근거들과 논증을 통해 행복을 위해 덕이 필수 불가결한 이유를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이상적 정치체제는 정치학에서 제시한다.
하지만 그의 정치체제는 플라톤의 것보다 더 현실적일지 몰라도 여전히 실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정치체제 하의 폴리스에서는 인간과 폴리스의 최종 목표인 행복과 이를 위해 필요한 덕을 중요시했고, 시민들이 모두 행복한 삶을 누릴 정도의 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덕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귀족정과 민주정의 특징을 섞은 혼합정으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최고의 덕을 가진 사람들을 필두로 한 귀족정을 어떻게 세우고, 시민들이 모두 행복한 삶을 누릴 정도의 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7권~8권에 걸쳐 이야기하는 교육이 이를 해결한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 그 교육 자체가 올바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 불구로 태어난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그러한 덕을 가지고 생활하기 어렵다고 판단되기에 낙태 혹은 유기해야만 한다는 초기의 조건이 특히 그러하다. 그리고 7년을 주기로 하는 신체적, 정신적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행복할 만한 덕을 가지도록 한다는 내용들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제시된 교육 방법들보다도 엄밀하지 않다. 또한 시민들은 행복을 얻을 만한 덕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만 하기에 농민, 상공업자들은 폴리스의 시민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당시 시대상에 갇힌 측면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상공업자에 대한 생각은 노예와 유사할 정도였다. 따라서 그의 정치체제가 실현 가능하다고 볼 수 없고, 억지로 시행하다가는 큰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누가 덕 있는 사람인지를 대중이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모든 시민이 덕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덕 있는 사람’이 아니라 ‘덕 있어 보이는 사람’을 지배자로 세움으로써 참주정이 탄생할 수 있다.
그리고 자체적인 논리적 오류 또는 자료의 실재와 관련한 오류들도 존재한다. 역자는 여러 각주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적인 오류를 저지르거나, 스스로 논의하겠다고 이야기한 내용들을 빼먹거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자료들이 실제와는 다른 내용들이 많음을 지적하였다. 이런 오류들 때문에 몇 번의 검증을 통해 나오는 현대 철학과는 다른 측면에서 책을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내용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거나 복잡한 내용은 아니지만 논리적 흐름이 막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문장 간의 호응이 직결되기보다는 한 문단 전체를 이해함으로써 문장 간의 호응이 맥락적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보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장인 경우가 있고, 심지어 한 문장 내에서 주술 관계가 무너진 경우도 있다. 이 문제들은 문단 전체를 통해 맥락적으로 그 관계를 추정하거나 역자의 각주를 통해서 해결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읽기 힘든 문장들이 존재한다. 결국 부드럽게 책 내용을 넘기기란 거의 어렵고, 두세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해야만 한다. 물론 고대 그리스어와 한국어 간의 문법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그런 부분이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플라톤의 남겨진 저서들은 플라톤의 대변자인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들이 대화하면서 문학적인 측면도 투입하는 등 저자에게 주의를 환기해 주는 장치가 있으나 본 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매우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정치체제들이 한계가 있을지언정, 플라톤이 제시한 이론들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플라톤이 추구하는 정치체제를 요약하면, 그는 철학자 왕이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애초에 철학자 왕이라는 개념이 ‘선의 이데아’를 아는 사람으로 사실상 신에 가까운 사람이다. (자세한 내용은 플라톤 <국가>에 대한 https://brunch.co.kr/@davidchan1/28 포스트를 참조하라) 인간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는 없기 때문에 플라톤의 이상적 정치체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신과 같은 존재’를 지배자로 세우게 되고 이는 결국 참주정이라는 최악의 정치체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애초에 이데아와 철학자 왕 자체의 개념은 플라톤이 제시한 논리적 체제하에서는 필연적일지 몰라도 그것을 현실 세계에서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이상적인 국가는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다. 단순히 플라톤의 이상적 정치체제를 국가 구성의 구체적 방법론으로 두지 않고, 이상적인 목표로 둔다고 하더라도 플라톤 정치체제의 핵심인 이데아와 철학자 왕은 도저히 현대에서 추구할 수 없기에 그 무의미함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을 지향하기는 하지만, 이데아를 수용하지 않고 경험에 기반한 탐구를 진행한다.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탐구하기 위해서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치체제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들을 모두 주의 깊게 탐구한다. 이후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플라톤과 같이 이상적인 모습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제시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이상과 절충한다. 즉 철학자 왕과 같은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 뜬구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실현 가능한 정치체제를 제시한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정치체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체제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플라톤을 많이 의식하고 비판하고 있다. 정치학 2권에서는 이론적으로 제시되었거나 실제로 나타난 정치체제를 비판하는데, 그는 당시 헬라스 지역의 정치체제를 비판하기 이전에 플라톤의 이상들과 정치체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플라톤 철학의 핵심 중 핵심인 이데아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플라톤이 내용을 전개하는 중에서 잘못된 근거를 사용했거나 논리적 오류를 사용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지적한다. 2권을 제외해도 <정치학> 전반에 걸쳐 플라톤의 정치체제를 극복해야 할 대상 혹은 문제점으로 두고 비판한다. 심지어 자신의 이상적 정치체제의 교육과 무시케를 논하는, 이상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도 플라톤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교육기관인 아카데메이아에서 공부했던 학생이고, 당시 플라톤의 위상이 높았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비판은 매우 파격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하게 플라톤을 비판하는 이유는 자신의 진리 추구를 위해 플라톤은 극복해야 할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플라톤의 <국가>를 읽었을 때 과하게 이상적인 내용들을 논할지라도 적어도 그 과정에서 올바른 논리와 올바른 근거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철학이 올바르지 않은 논리와 근거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들을 아주 많이 발견하였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을 통해 완벽해 보이는 어떤 철학이라도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라톤에 대한 지적을 살펴보면, 너무 과하게 이상적이거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내용들에서 주로 오류를 찾아낸다. 대표적인 예시가 이데아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어떤 사물이 가진 성질에 이데아가 있다고 직관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것과 철학자가 논하는 것이 다를 때는 철저히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하는 탐구 방법론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으로 아마 아리스토텔레스 본인이 플라톤의 오류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오류들의 일관성을 발견하고, 이를 탐구 방법론으로 확립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을 통해 플라톤이 제시한 정치체제들의 모순점과 한계들을 어느 정도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철학자들의 책을 접했을 때는 현실에서 접한 논증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엄밀함 때문에 그들의 사상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그런 철학자들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특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들과 철학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철학적 내용 전개는 결국 수많은 오류를 범하는 것을 자신이 플라톤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증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 성찰뿐 아니라 정치철학 자체와 관련해서도 충분히 의의가 있는 책이었다. 독자가 바라보는 정치철학의 목적이 어떤 국가를 세우는 구체적 방법론적이 아니라 지향점으로 둔다면 말이다. 우리가 실제로 덕 있는 사람들을 지배자로 두기 위해서 현대의 민주정을 뜯어고치기 시작한다면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그 부작용에 따른 해악이 너무나 크겠지만, 올바른 지도자를 뽑고, 올바른 공동체를 세우는 과정에서 덕을 그 기준으로 세운다면 그것이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원한 정치체제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전개하는 논증의 전제를 살펴보면 명백히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시작하면서, 모든 논증은 그 주제에 따른 엄밀함을 달리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기하학자에게는 엄밀한 논증을, 수사학자에게는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논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도덕철학 역시 엄밀한 논증을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제에 따른 논증의 설계를 통해 그가 시대상에 대해 매우 깊은 통찰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철학으로는 엄밀한 행동강령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는 후대의 철학자인 칸트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데, 따라서 당시 시대의 한계상을 명확히 파악하고 최대한의 해결책을 내놓은 그의 통찰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도덕철학과 마찬가지로 정치철학과 이상적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수학에서 요구되는 엄밀함은 필요하지 않고, 실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이상적 정치체제는 엄밀하지 않고, 그것을 구체적 실현 방안으로 두기보다는 지향점으로 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여담으로, 이 책은 플라톤의 <국가>, <법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었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생각한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에 대한 연대기를 전반적으로 파악하며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