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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비서가 Sep 23. 2021

제3화 축적하는행위, 자기 계발의 습관

나의 오래된 공부법:축적의 레시피

사실 우리는 무언가를 ‘집으로 가져가는’ 단 한 가지 일에만 진심으로 마음을 쏟는다. 그 외에 삶, 이른바 ‘체험’에 관한 일에 우리 중에서 과연 누가 진지하게 마음을 쓰겠는가? 아니면 그럴 시간이 충분하겠는가? 우리는 그러한 일에 한 번도 제대로 집중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이 거기에 가 있지 않고, 우리의 귀조차 거기에 가 있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이 세상 사람 같지 않게 멍하니 자기 자신에 몰두해 있다가 마침 정오를 알리는 열두 번의 종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대체 몇 시를 쳤지?’라고 묻는 사람처럼, 우리도 때때로 나중에 가서야 귀를 비비고는, 무척 놀라고 당황해하며 ‘우리가 대체 무슨 체험을 했지? 더 나아가 우리가 대체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 니체, 도덕의 계보학   

     

  퇴근 후 나의 일주일은 이렇게 ‘집으로 가져가는 행위’로 꽉 차있다. 실질적인 스펙 쌓기를 위한 것부터 인성과 예술적 감수성, 리더십 등에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나름의 목표를 설정하여 픽한 온갖 배움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일과 중 업무가 녹록한 것도 아니다. 근무시간 중 업무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숨 쉴 틈 없는 회장의 호출과 요청사항 처리, 이어지는 회의들로 꽉 차 있다. 화장실을 제대로 가지 못해 주기적인 방광염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가족은 일과 중 나와의 연락은 기대조차 하지 않을 정도이다. 


  주중에는 주로 인성과 예술적 감수성을 강화하기 위한 배움의 시간이다. 월요일은 패션, 화요일은 ‘클래스 101’ 원격 컬러 공부, 수요일은 수채화와 캘리그래피, 목요일은 힌두 명상, 금요일은 네트워킹을 위한 미팅과 스케줄 조정을 위한 예비일로 남겨뒀다. 감각적인 내가 되기 위한 공부라고 스스로 처방한다. 마음치유학교, 퇴사 학교, 온오프믹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크몽에서 주기적으로 배울 거리를 검색한다. 포노 사피엔스에게 필요한 팟캐스트와 유튜브 제작기법, 1인 독립출판, 블로그 운영은 기본이다. 이런 수업은 소위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한 공부로 분류된다.


  주말은 커리어를 위한 스펙 쌓기에 집중한다. 리더십과 코칭능력을 키우기 위해 NLP, 오라소마, 로고 세러피, 퍼실리테이터 단계별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저녁에는 교수 임용을 위한 저널 스터디가 있다. 그리고 일요일, 감이당에 온다. 이때는 거의 지친 몸이다. 학인들은 늘 좀 지쳐 보인다고 피드백을 준다. 전 주에 과로로 며칠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는데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이불속에만 있었다. 오히려 이때 학인들은 내 얼굴에 생기가 돈다며, 빛이 나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아무것도 채우지 않았는데 더 나아 보인다니!

 

  작업실 겸 서재로 쓰는 거실은 원래 남편과 나의 공용공간이었다. 남편은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한다. 나는 책을 읽기보다 모으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 같은데, 남편은 내가 사 모으는 책을 차근차근 읽어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온갖 공부에 딸린 과제에 매달려 있으면, 옆에서 오롯이 책을 읽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남편이 자기 짐을 몽땅 싸서 침실로 들여갔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제 더 이상 정신 사나워 여기에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편의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사방에 널려있는 페이퍼, 붓이며 물감이 짜진 팔레트 등의 미술도구에 최근에 블로그 공동구매로 들여온 재봉틀까지… 마치 만국 박람회장처럼 내 공간이 벌려져 있었다. 나의 일상, 나의 주의가 체험 박람회장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인가가 되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는 나.


  그 많은 체험 레시피를 가지고 시도해보지만 별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나 늘 하던 대로 습관처럼 나는 쉬지 않고 계발한다. 소위 자기 계발 말이다. 기쁘지 않아도, 온전히 몰입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는 작은 자기만족을 위안 삼아 이 오래된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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