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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Oct 19. 2024

10억 1만 원이라는 의리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는다

“와~ 이거 무슨 매니저가 이래 성의가 없노?!!!!!”


가장 기분이 나쁜 매출은 목표대비 99% 달성이다. 목표가 1억이면 99백만 원, 10백만 원 목표의 990만 원. 보통 10 단위의 목표를 많이 정리해서 그런지 그 99% 달성은 각 브랜드의 분배 등급이나, 행사 우선권 등을 결정하게 된다. 월평균 매출에 따라 다음 시즌에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상품의 수량도, 종류도 달라진다. 99백만 원을 한 브랜드는 1억 원이 아니다. 고작 1%의 차이가 왜 그리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물은 99도에서는 끓지 않는다. 월 1억 브랜드를 평가한다 쳐도 9990만 원 브랜드는 해당사항이 없다. 브랜드의 등급과 위신이 달라진다. 등급이 달라지면 매출 기회도 달라진다. 물론 해당 브랜드의 매출을 책임지는 매니저에 대한 평가도 다르고, 수수료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기분이 다르다. 


그날 점포의 매출목표는 10억이었다.


점포에 5개 층이 있다면 각 층에서 2억씩, 각 층에 40개 브랜드가 있다면 각 브랜드 당일 매출목표는 평균 5백만 원씩 하면 달성할 일이다. 10억이라는 목표를 위해 해당점포의 각 층을 맡고 있는 팀장은 한두 달 전부터 각 브랜드에 매출목표를 확인시켜 준다. 지난해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던 날의 매출비중을 나누고 별도 공간에 행사를 하거나, 상품권행사 등을 하는 브랜드에는 조금 더 과한 매출목표를 부여한다. 사실 행사를 진행할 때부터 매출목표를 약속받고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목표는 지켜지지 않는다. 별도 행사공간만 주면 하루 1억 도 할 수 있을 것 같던 브랜드가 당일 1천만 원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평소 평일에는 당일 1백만 원도 못 파는 브랜드도 많다. 매일매일 매출이 1백만 원도 못하던 브랜드가 갑자기 5백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한 갑질과 허언증의 어디쯤에서 우리는 연간 제일 높은 매출을 만들어간다.


아침부터 줄을 서서 백화점에 들어오는 고객을 보면, 정신이 없어도 기분이 좋았다. 꼭 우리 층 내가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에서 옷을 사지 않더라도, 일단 들어온 고객이 빠르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백화점을 돌고 돌다 내 매장에도 오게끔, 상품권 행사나 사은행사를 준비했다. 30/50/100만 원 구매 시마다 상품권 행사 등을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하루에 옷을 사야 하는 이유를 잔뜩 만들어둔다. 또한 각 매장별로 필요한 추가 PDA(카드 계산기)를 확보하고, 행사장 중간에 별도 POS를 설치해 계산이 가능하게 한다. 계산 줄이 길어서 돌아나가는 고객이 없어야 한다. 


추세가 나쁘지 않았다. 영업 종료시점으로 4할쯤 왔을 때 매출의 2 배수를 종료매출로 추정하거나, 전월 행사일의 매출 추이등으로 마감매출을 예상해 볼 때, 얼추 달성할 수 있을 매출이었다. 나는 매장을 돌아다니며 바쁜 매장에서 PDA를 찍거나 계산을 도와주고, 혹은 상품을 쇼핑백에 넣어주며 줄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힘을 보탠다. 이 것은 나의 일이 아니지만, 그들의 매출은 나의 매출이기도 하다. 각 매니저님들이 자기 단골 고객을 불러들이거나, 미리 현금 예약금 등을 잡아둔 것을 확인해 본다. 하지만 추세는 언제나 새침한 애인같이 꼭 마지막에 고개를 돌려 실망의 여지를 준다. 마감 1시간쯤을 남기고 10억 매출 목표의 96천 정도의 매출이 되면, 현장에서는 똥줄이 탄다. 어느 층, 어느 브랜드 하나하나가 매출 목표를 달성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점포의 매출이 달성하냐 못하냐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들여도 99도에서는 물이 끓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아무리 99% 달성이라도 기분이 좋지 않다.


"팀장님, 층에 아직 고객 많죠? 오실 고객님들 아직 있으시죠?"

"그럼요 지점장님~ 아유. 저희 아직 매출 좀 남았습니다"

지점장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너도 모르는데 난들 아냐고 성질을 내고 싶지만, 사회화 및 회사화로 잘 코팅된 나는, 또한 넉살 좋게 받아넘긴다. 넉살 좋게 받아넘기는 여유로운 목소리와는 달리,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다리를 바삐 움직여 각 매장의 상태를 확인한다. 한 달 전부터 목표세팅과 전우애로 물든 매니저들은 그들의 목표는 이미 달성했을 때에도, 나의 목표가 달성되지 못하였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마지막까지 목표를 위해 노력해 준다. 그리고 마감 음악이 흐르면, 어떤 계산대는 종료되지 못하고 남아 남은 매출을 타건한다. 

목표를 달성했다고 성과급이 나오지도 않고, 이러한 이벤트를 위해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도 없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회사인으로써의 나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그리고 1억 달성, 1천 달성 매니저라는 타이틀은 매니저님들의 자긍심을 높여줬을 것이다.  그렇게, 1억 목표에서 1만 원을 초과한 그런 날. 그렇게 우리의 전우애가 조금 더 끈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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