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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Oct 25. 2024

참을 수 없는 징계의 가벼움

그 징계는 과연 어떤 의미를 남긴 것일까?

처음 감사실에 불려간 것은 이탈리아 출장을 다니던 때였다. 잦은 출장의 끝에 나는 휴직을 하겠다고 했고, 한달 즈음의 휴직계 처리 기간 사이 나는 감사실 연락을 받았다. 왜 이렇게 이상한 물건을 많이 샀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부서장님의 요청으로 갑작스레 이탈리아 출장을 동행하게 되었고, 이후로 급하게 업무가 바뀌었다. 평소 관심도 없던 '베르사체', '트루릴리전' 등의 이해안되는 이상한 상품들을 사겠다는 계약을 써야 했다. 이건 도저히 팔 수 없다고 항변을 해도, 출장길을 동행한 이사님은 이탈리아 출장을 왔으면 이 정도는 사야 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악수를 하고 계약을 진행했다. 한두달에 한번씩 이탈리아 어느 동네의 숙소를 예약하고 통역하고 물건을 뒤진 끝은 남은 것은 불면증과 감사실 기록이었다.


"상무님과 출장을 가서, 상무님이 사야한다고 하시는데 대리 나부랭이가 모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나의 항변이 그럴싸 했는지, 혹은 그 이탈리아 출장의 고단함으로 인해 내가 휴직을 한다는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첫번째 감사는 그렇게 지나갔다. 

내가 출장다는 곳은 이렇게 화려한 패션스트릿이기 보다는 재고가 쌓인 창고들이었지만


두번째는 백화점 온라인 팀에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매니저의 신고가 있었다. 온라인딜 관련하여 기분좋게 의논을 하던 매니저는 배송비를 부담해야한다는 말에 발끈했다. 각 브랜드의 매출을 올리는 일이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부자재와 딜과 관련한 비용을 부담하니, 매니저님께서 배송비를 부담하시는게 어떻냐고 설득해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딜을 취소하겠다고 하지 말자고 하니, 내가 갑질을 한다고 했다. 눈이 동그래져서 옆에 있는 대리님과 의아한 눈맞춤을 하고 있으니, 자기를 무시한다고 했다.


감사실은 나에게 전화가 와서 매니저의 신고가 있었다고 사과를 하고 마무리 하자고 했다.

"훔... 이게 정말 제가 잘못한 일이고, 문제가 있는거라면 제가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근데 전 사과는 못하겠어요. 이렇게 사과를 해버리면, 전 이후에도 이 업무를 계속 진행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진심이 느껴져서 였을까? 두번째 감사도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아동복은 단가가 낮지만, 배송비는 무료로 진행해야 해서 아주 진행이 어려웠다 ㅠㅠ


마지막 감사는 얼마 전, 다시 본사에 들어와 해외아동상품을 병행수입하는 일을 하던 때였다.

해외 매입을 하는 MD 대다수가 감사실에 불려갔고, 적당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기존에 하던 업무의 프로세스를 그대로 받아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매입에 대해 보고를 했고, 예산을 받은 매입이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누가 신고한 것인지, 무엇이 문제라서 감사실에 소환된 것인지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지난 두번의 감사에서도 내가 한 일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했고, 나의 논리가 잘못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내가 설명한 프로세스를 부정한 사람은 없지만, 나의 일은 부정당했고 결국 나를 포함한 8명의 직원은 징계를 받았다. 지금껏 없던 규모의 징계였으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사수였던 차장님은 정직1개월이었으므로 나의 '견책'은 너무 가벼운 징계로 보였으나, 같은 팀에서 2명이나 동일 사유로 징계를 받은 팀이 없었다. 또한 나는 징계를 받았음에도, 기존에 하고 있던 업무를 그대로 해내야 했다. 거기에 징계로 1개월을 비우는 사수의 업무가 얹어졌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승진을 앞에 두고 있는 애는 좀 빼줘야 했던거 아니냐?"

고생한다며 밥이나 사주겠다고 하던 선배의 말이었다. 같은 점포에 근무하며 나를 승진시키지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선배가 거드는 소리에,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한방 맞았다. 

어떻게든 항명했어야 했었다. 회사를 계속 다닐거, 굳이 승진을 하겠다며 들어온 본사였다. 아무리 견책이라지만, 징계를 받고나니 목적이 멀어졌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맥이 탁, 풀렸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승진을 했다. 징계를 받고 고작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부서의 시끄러움과 정신없는 물류 출장의 어디메에서 나는 부서의 유일한 후보였고, 그 누구도 열심히 도와주지는 않은 것 같으나 모두의 도움으로 승진을 했다. 대리를 달고 10년만이었다. 징계 기록이 있으면 승진이 힘들다고 했으나, 징계를 받은지 고작 2개월이 지났을 뿐이었다.


과연, 이 징계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혹여 내가 그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면, 왜 징계를 받은 후로도 나는 계속 그 일을 똑같이 해야 했을까? 새로운 대표의 이전 과오를 청산하는 작업이었다면, 나는 왜 어떻게 승진을 할 수 있었을까?

내 마음에 주홍글씨처럼 상처를 남긴 징계가, 그들에게는 너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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