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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maflower Sep 06. 2020

프레데릭 말 엉빠성


프레데릭 말 엉빠썽

Frederic Malle En Passant (2000)



오늘 소개드릴 향수는 바로 프레데릭 말의 엉빠썽입니다. 엉빠썽의 조향사는 딥티크 필로시코스를 조향한 것으로도 유명한 올리비아 지아코베티(Olivia Giacobetti) 인데요. 프레데릭 말이 처음 향수 브랜드를 기획할 때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준 일곱 명 중 유일한 여성 조향사이기도 하죠.


여담이지만, 다른 예술 분야와 비슷하게 향수 업계도 여성이 설 자리가 정말 좁았다고 해요. 겔랑 가문 출신인 패트리샤 드 니콜라이(Patricia de Nicolaï)가 조향사 교육 과정을 마치고 취업하려 했을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아 어렵게 삼촌 장 폴 겔랑의 도움으로 한 향료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겔랑 조향사의 세대교체 당시 유력한 후보자로 언급되었지만 결국 겔랑 가문 출신이 아닌 티에리 바써(Thierry Wasser)가 영광을 이어받았고, 그녀가 여성이었던 것이 꼭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겠지만(이미 니콜라이라는 향수 브랜드를 갖고 있기도 했고) 아직까지도 향수 업계의 여성 차별 사례로 종종 언급이 되곤 합니다.


프레데릭 말이 남성 조향사를 선호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고요! 프랑스(특히 그라스) 출신의 남자 조향사가 절대적으로 우위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성별 구분 없이 다양한 국가 출신의 조향사분들이 활약하고 계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다시 엉빠썽 얘기로 돌아오면, 원하는 향을 마음껏 만들라는 프레데릭 말의 제안에 올리비아 지아코베티 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냄새를 향으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건 바로, 꽃집이 있던 동네 거리걸을 때 맡았던 라일락 향이었어.


 자체보다향이 스쳐간 그 순간이 더 기억에 남았기 때문인지, 향수 이름은 엉빠썽(En Passant)이라고 지었습니다. 영어로는 passing by, 우리 말로는 (스쳐) 지나간다는 뜻의 프랑스어예요. 


프레데릭 말 & 올리비아 지아코베티


엉빠썽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한창 비가 쏟아진 후 서늘한 바람에 실려오는 물기 머금은 라일락 입니다. 원한 워터리 그린 노트로 시작하지만 동시에 파우더리하고 달콤한 라일락 향이 아주 부드럽게 피부를 감싸요.


나의 꽃을 모티브로 한 비교적 심플한 향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엉빠썽 단순히 생화의 향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라일락이 핀 봄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때문이 아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은 올리비아 지아코베티가 어린 시절 걸었다는 그 거리에 꽃집과 함께 빵집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엉빠썽에는 밀(wheat) 노트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향에서 곡물의 냄새를 딱 짚어내긴 어렵지만요.


고소한 빵 냄새, 향긋한 꽃 냄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문득 바람에 실린 냄새가 코 끝을 스쳐 지나갈 때 우리는 가장 취약한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원치 않아도 매우 즉각적으로 또 원초적으로 반응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요즘 같아선 그 어떤 냄새라도 좋으니 밖에서 크게 숨을 들이킬 수 있는 자유가 간절하지. 내년 봄에는 부디 엉빠썽이 그려낸 봄의 향기를 실제로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프레데릭 말 엉빠썽은 오이, 밀, 쁘띠그랑, 워터리, 라일락 노트를 포함하고 있어요. 50ml  2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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