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의 '동기(motivation)'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을 인정했다. 대신 둘째 딸은 산행 가겠다고 나서서 우리 가족 중 3명이 6차 산행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올라온 교육대장님의 6차 산행에 대한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성삼재-고기리 구간은 지리산 조망권을 보유한 프리미엄 코스입니다. 특별히 더 행복한 산행이 기대됩니다."
프리미엄 코스라는 신선한 단어에서 이번 산행에 첫째 딸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 문장을 보내주면서 혹시 프리미엄 코스를 함께할 생각이 없냐고 했더니...
단호히 없다고 했다. 너무나도 단호해서 1차 포기를 했다.
그리고 산행 출발 2일 전, 둘째 아이가 핸드폰 케이스를 산다고 나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하는데(이전에 사주기로 했다.) 그 옆에 첫째가 자기도 버즈 케이스 사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첫째 아이는 이때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나는 첫째 딸에게 버즈 케이스도 받았는데 이번 산행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동생을 끌어들여서 언니가 함께하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고 하면서 군불을 때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완강하게 버텨서 이번 산행만큼은 아빠가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다. 기존에는 한 번도 산행의 보상을 준 적이 없는데 프리미엄 코스라는 말에 과감히 질렀다. 그런데도 넘어올 듯, 올 듯 안 넘어온다. 이제는 더워서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날씨 예보를 보내줬다.
첫째 아이는 '생각해 볼게'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속으로 60%는 넘어왔구나 싶어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도루묵처럼 안 가겠는 완강한 입장이었다. 그래서 2차 포기를 했다.
그리고 산행 출발 5시간 전인 저녁 시간에 마지막 시도를 한다.
날씨도 좋고, 구간도 11.4km로 짧고, 거저먹는 구간인데 언니가 안 가서 아쉽다면서 둘째와 3차 군불을 때운다. 이 시간 동안 아이가 마음을 바꾸어 가겠다고 한다.
삼고초려. 이것이 바로 삼고초려의 현실판 아닌가!!!!!!
이번 산행은 00시 출발이기에 자지 않고 가기로 하고, 아이들은 TV를 보다가 23시 10분부터 부랴부랴 준비를 하는데 살짝 늦어버렸다. 후다다닥 준비해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첫째 딸까지 4명이 출발하니 기분이 좋았다.
버스를 타고 자다가 잠시 일어나 휴게소 화장실도 다녀오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3시 46분 정도가 되었다. 아침으로 주먹밥을 먹고 체조를 하고 출발 준비를 하고 4시 36분경 산행을 개시했다.
만복대까지 주욱 오르막인데, 경사가 완만한 편이어서 크게 어렵지 않게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앞쪽에서 '우와~~~~'를 연신 내뱉고 있다. 아래에서 올라가는 나는 뭐 때문에 저런 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올라가 보니, 뭐 별 거 없었다. 괜히 설레발치지 마시고 얼른 올라가시라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구름 사이로 하늘 섬처럼 저 멀리 산봉우리들이 보여서, 나도 '우와~~~~~'를 외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꿈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작은 고리봉에 올랐을 즈음 여기가 정말 프리미엄 코스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는 풍광을 만나게 된다.
운해(雲海). 구름의 바다를 보았다.
구름의 바다가 산을 만나 파도가 치고 그 산을 넘어가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 일출까지 떠오른다. 이런 장관을 또 볼 수 있을까?
운해 덕에 하늘에 떠 있는 섬 같은 봉우리 옆으로 태양이 뜨겁게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감을 잃는 순간이었다. 오랜 산행 경험을 갖고 계신 후미대장님도 이렇게 멋진 운해는 거의 처음 보신다고 했다.
오늘 산행은 구름바다 위를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만복대에서 전원이 모여서 단체사진도 찍었고, 산행도 13:20분경에 끝나면서 참가한 모든 대원이 즐겁고 행복하게 산행을 마무리했다.
교육대장님의 '프리미엄 코스'라는 말과 행복한 산행이 현실이 되었던 날이었다.
첫째 딸은 선두에서 친구들과 가기 때문에 산행 중에는 만날 일이 없었는데, 산행을 마치고 주변 어른들이 첫째 딸이 '오길 잘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만복대에서 첫째 딸을 만났을 때, '아빠, 우리는 왜 가족사진 안 찍을 거야?'라는 비문을 던졌지만, 찰떡같이 알아듣고 4명 가족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