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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한 Feb 12. 2020

우리는 어떻게 꼰대가 되는가

꼰대와 롤모델

  "너는 어떤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았니?"


  대학교 때 전공 교수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던 말씀이다. 식사 자리에서 물어보신 말씀이었는데, 선생님의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그럴 수 있지. 꼭 롤모델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 그냥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라고 하시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콩국수에 집중하셨다. 말할 테면 말해보고, 아니면 말라는 식이었다. 정말 별 것 아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한참을 더 생각하다가 좋아하는 작가는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 작가의 글쓰기에 대해 즐겁게 대화했다.


  롤모델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터라 롤모델이 없어도 좋다는 말은 사실은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생님이 질문을 하시고 그 대답을 받아들이시는 방식이었다. 가르치거나 교정하려 하시지 않고, 나라는 인간의 생김새를 궁금해하고 계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지식을 전수하시는 방식 또한 다르지 않아서, 늘 질문하시고 학생들의 의견을 깊이 살펴주셨다. 새로운 시각에는 박수를 쳐주셨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셨고, 나 또한 존경했다.


  롤모델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또 다른 일이 있다. 한 정치인 대학생들이 모인 곳에 가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젊은 층에게 지지를 받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학생들 반응이 좋지 않자 그가 이런 말을 했단다.


  "내가 너희들 롤모델인데, 왜 나를 안 좋아해?"


  말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말이 아니다. 아무런 구조도,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은 이 무슨 의미인지, 어떤 의도로 이런 소리를 냈는지 알 수 없다.  그 소리들 가운데에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낱말이 존재할 뿐이다.


  젊은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었던 그는 사실 그냥 꼰대였다. 검사, 지자체장을 거쳐 대선에 출마자신의 화려한 경력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가, 누군가가 롤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꼰대는 회의 없이 확신만을 강화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외부의 더 나은 것을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가치판단을 해야 할 때는 자기 의견과 부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만 따진다.


  또, 그에게는 소통 의지가 없었다. 자기 말이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서로'. 꼰대는 남의 말에 관심이 없고, 자기 말이 남에게 어떻게 들릴지에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남의 말을 쉽게 오해한다. 물론 그가 하는 말도 쉽사리 오해를 사고 물의를 일으킨다.


  세대 간의 갈등 혐오 표현으로 드러나는 시절이다. 자연스럽게 꼰대라는 말이 문화적 심벌로 부상했다. 우리가 떠올리는 꼰대의 전형은 완고하고 확신에 찬, 감수성 부족한 인간이다. 그런데 사실은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젊은 꼰대'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경험은 개인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로부터 얻은 지식과 믿음타당한지 끊임없이 돌아보고 타자와 소통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고인 물이 썩듯 누구나 꼰대가  수 있다.


  돌아보기를 멈는 순간, 리도 꼰대가 된다.




2020.02.12.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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