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과 취향이 존중되다
사람들은 Bespoke를 삼성 냉장고 브랜드명이라고 생각할까? 그럴 수 있다. 이 말을 처음 들었다면 말이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소비자가 원하는 색상이나 재질을 선택하면 원하는 조합으로 제작한다. 주문자 요구 생산 또는 맞춤형 제작 방식이다.
2008년도, 영국 남성 패션 브랜드 Alfred Dunhill에 입사하고 나서야 Bespoke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다.
던힐에서는 매 시즌 SS와 AW기성복 Suit를 판매하지만, 맞춤복을 제작 판매하기도 한다.
영국 Tailor가 한국을 방문하여 고객 체촌을 하고, 고객 기호에 맞춰 원단과 커프스 버튼, 색상이나 목 카라 등을 반영한 맞춤 정장을 제작한다. 일반적으로 맞춤 제작을 Custom made라고 하지만, 선택 옵션을 더 늘려 고객 주문에 따라 만들어진 맞춤복을 Bespoke정장이라 불렀다. 물론 기성복보다 몇 배 비싸다. 기다리는 시간도 최소 3개월이다.
세계 남성복 패션의 양대 산맥은 영국과 이태리다.
영국에서는 맞춤복을 Bespoke라고 부른다. 이태리에서는 Sumizura라고 한다. 던힐에서 근무했던 나는 비스포크라고 했고,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수미주라'라고 했다
맞춤정장의 기원이 어느 나라인지, Bespoke가 원조인지 Sumizura가 원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어의 영향력은 아무래도 영어권이 우위에 있을 테다. 당연히 삼성도 Sumizura냉장고라고 하지 않고 Bespoke냉장고라고 이름을 지었다.
Bespoke의 사전적 의미는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이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소비문화 수준이 높아간다.
Bespoke제품은 기성품과 구분된다.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먼저 듣는다. 그다음 소비자 기호에 맞추어 생산한다.
삼성 Bespoke 냉장고는 시장에서 예상보다 더 큰 성공이라고 한다.
Bespoke 냉장고는 Bespoke정장에서 모티브를 얻었는지 모르겠다.
Bespoke가전의 성공에 뒤이어, 또 다른 Bespoke는 어떤 카테고리가 될 수 있을까?
난 Bespoke주택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는 것을 상상해본다.
똑같은 구조로 찍어낸 대형 건설사의 아파트가 아니라 거주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설계된 주택 말이다.
국토교통부 거주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0년대 서울시내 아파트 거주비율은 60%나 된다고 한다. 아파트는 획일화된 거주공간을 상징한다. 규격화된 아파트는 투자와 교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거주공간의 개성은 사라지고 아파트 군집의 전체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Bespoke문화는 개인의 선택과 취향을 존중하는 대신에 가격은 비싸다. 반면에 기성품은 대중적이며 저렴하다. 그런데 주거문화에 있어서만큼, 기성품인 아파트 가격이 턱없이 비싸다.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지어진 단독 건축은, 즉 Bespoke주택은 상대적으로 싸다.
Bespoke가 고급이며 가치가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우리의 주거문화에도 스며들기를 희망해본다.
그럴 때 비로소 '아파트 로또 당첨'이라는 말이 잦아들 것이다.
아파트는 저렴하게 살 수 있고 Bespoke주택은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만일 생성된다면,
'아파트 공화국'한국의 많은 문제점이 조금은 옅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