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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수레 Sep 08. 2022

동아시아 보부상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똑 같이 필요한

조선시대 5일장에는 '보부상'(褓負商)이라는 행상이 있었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장식품이나 귀금속 등의 진귀한 물품을 취급하는 보상과 토기, 생선, 소금 등과 같은 값싼 생활품목을 지니고 다닌 부상으로 나뉜다. 보부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보부상을 전문적으로 보호 육성하기 위한 정부조직이 있었을 만큼 이들은 조선시대 상업의 주역이었다. 


한국 면세점의 큰손은 다이고(代購, Daigou)이다. 다이고는 대리구매상을 뜻하는 중국어로서, 한국 면세점에서 싸게 상품을 구매한 후 중국에서 재판매하는 업자를 일컫는다.   

중국 내 사업자가 한국에 갈 여행객들을 모집하여 면세점에서 물건을 대신 구매하게 하고 상품대금과 일정 수수료를 지급하는 형태이다. 처음에는 개인 보따리장수 규모에서 시작했으나, 이제는 거래 규모가 커져서 백억 원을 한 번에 구매해 갈 정도록 기업 간 거래가 되었다. 


코로나19 기간 중 개인 해외여행은 사라졌다. 하늘길이 멈췄다.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국내 면세점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매출이 필요했다. 대형 Daigou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주는 수수료 또는 가격 할인율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이익은 기대하지 않고 본전에 파는 수준이다. 바잉파워가 있는 중국 대형 다이고 업체들은 코로나 시기에 이익률을 높여가며 한국 면세점에서 구매를 높여갔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1년도 면세점 매출 18조 원의 90% 이상이 중국 Daigou가 구매해갔다. 


면세시장을 직접 담당하기 전까지는 Daigou가 왜 존재하는지 몰랐다. 면세점에 가면 설화수 화장품이나 SK-2 화장품을 사기 위해 줄 지어 서있는 중국인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익이 발생하는 곳에 사람이 몰렸다. 

한국 면세점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서 중국 내 재판 매상에게 전달하면 이익이 남는다. 글로벌 브랜드는 보통 중국 내 판매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 중국은 세금이 높다. 한국의 부가가치세는 10%이지만 중국은 增置稅(부가가치세와 동일 개념)가 17%이다. 화장품 및 명품 등에는 게다가 특별소비세 등도 부과된다.    


대부분의 글로벌 브랜드의 마켓별 가격정책은, 세금이 없는 Hongkong 가격 Index를 100이라 할 때, 중국 가격 Index를 120~130로 설정한다. 한국 면세는 Hongkong과 같은 수준으로 설정한다. 

대형 Daigou들은 한국 면세에서 구매 시 30% 이상 할인까지 받는다는 것이 업계 정설이다. 그러니 중국 내 정상 소비자가 대비 반값으로 구매하는 셈이다. 


중국이 지난 20여 년간 경제적으로 굴기하면서 우리는 중국과의 경제교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면세점 사업이 가장 대표적으로 중국으로 인해 혜택을 얻은 업종이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국내 면세점이 18조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중 약 16조 원가량의 매출을 발생해준 중국 Daigou의 덕분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국내 면세점이 코로나 2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Daigou 역시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점에서 한국 면세를 이용했다. 개인구매고객 (FIT)이 없는 미증유의 상황 속에서 다이고는 우리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2010년 중반까지 중국은 한국에게 가장 큰 Cash Cow였다. 

2017년 THAAD 보복조치로 중국 정부가 한국문화 수입을 전면 금지하자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BTS로 대표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미국, 유럽 등으로 무대를 넓혔다. 더 이상 중국과 일본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한국 면세업계 역시 지나친 Daigou의존  Risk를 느낀다. Daigou의존도를 낮추고 고객 다변화 방안을 강구중이다.  하지만 아직 Daigou는 한국면세업계에 있어 대체할 수 없이 가장크고 중요한 고객이다. 보따리장수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13억 중국 소비시장이 있었기에 보따리장수 Daigou가 있다. 이웃국가에 큰 소비시장이 있다는 점은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축복이다. 


한국 면세점이 브랜드, 마케팅, 서비스, 신뢰도를 갖추지 못했다면 Daigou도 한국 면세점에서 그처럼 구매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면세점은 코로나 시기에 생존을 위해서 이익을 포기하고 두배 이상의 수수료를 지급하며 Daigou에 판매를 하였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기본에 충실하는 것과 함께 위기상황에서 다 던지고 생존하려는 강력한 생존 욕구가 필요하다. 

Daigou는 코로나 시기에 위축되지 않고 전보다 더 공격적으로 한국 면세점에서 제품을 싼 값에 구매했다. 


보부상은 조선시대에 장터를 돌아다니며 상품을 유통시켜 지방경제를 활성화시킨 주역이었다. Daigou는 2010년대부터 한국 면세점에서 상품을 구매하여 중국으로 유통시켜 주었다. 코로나 시기에 해외 이동이 제한된 상황 속에서 한국 면세점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주역이다. 보부상과 Daigou는 시대와 국적은 다르지만 우리 경제에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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