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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Oct 12. 2024

그리고 우린 하나였다.

문화비 지출해야 할 건이 있어, 어쩌다가 재즈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간 재즈 페스티벌이 9년 전(아마도) 000 재즈 페스티벌이었는데, '뭐지 이걸 왜 재즈 페스티벌에서 들어야 하지, 이게 무슨 재즈냐!'라고 외친 다음으로는 스스로도 민망해 어느 곳에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사회성은 많이 기른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축제의 한복판에서 '이게 무슨 재즈냐'라고 외치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않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불씨는 남아 있었다. 다행히 반대 방향으로.


먼저 Eddie Gomez Trio 공연이 낮 시간에 있었는데, 낮이고,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정확히 헤드가 끝날 때와 솔로가 끝날 때에만 박수쳤다. 아무도 신음도 내지 않고,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다. 이건 좀 개인적으로 좀 심한 거 아닌가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왜냐하면 탄성과 우우, 으악, 박수 소리가 폭풍우처럼 휘몰아 칠 구간을 지나는 데도, 모두 앉아 혼신의 연주를 보여주는 세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All blues는 페스티벌 막곡으로 나왔다면 사람들 다 쓰러지고, 무대 날아가고, 응급차 출동하고, 난리 났을 만한 곡이었다.

그걸 그냥 박수만 치고 끝낸 것이다.

세상에.

혼자서 난리를 피울 깜냥은 없었다. 속으로만 부르짖었다. 부디 우리들에게 실망하지 말아 달라고, 우리도 재즈 좋아한다고.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재즈를 좋아했다. 마지막 연주자는 Gilberto Gil였는데, 전혀 모르는 뮤지션이었다. 그렇다.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페스티벌에 왔고, 가장 마지막에 나오니, 가장 대단한 사람이겠군 하는 자세로 연주를 들었다. 좋은 곡은 좋았고, 맞지 않는 곡은 맞지 않았다. 듣는 내내,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마지막 곡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어느새 오른쪽 진영 앞자리 사람들이 일어서 있었고-이 사람들은 무려 브라질 국기를 들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진영의 사람들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래선 안 된다. 이건 페스티벌이니까. 질 수 없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가장 앞자리에 있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거의 스눕독 콘서트에 온 사람처럼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스탠딩 공연이 되었고, 뒤에서 아멘, 할렐루야, 갓 블레스 유와 기타 국적을 알 수 없는 추임새가 난무했다. 옆 사람들이 갑자기 단체로 춤을 추고, 뒤에 있던 사람들이 앞 열로 나와 부르짖었다. 

그 사람들은 취했고, 난 멀쩡했다.


그래서 우린 하나였다.

음악 안에서

희망하건대


재즈 페스티벌은 혼자 가야 한다. 늦게 가도 방석 하나만 있으면 1열에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혼자 가야, 돌아오는 길이 덜 부끄럽다.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ps. 곤란한 노래는 정말 곤란했고, 개인사는 정말 개인적이었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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