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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 노튼 Dec 07. 2022

내가 죽었다

(이전 글에 이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욥의 이야기를 읽으며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것을 믿는 것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생명'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단순히 생명은 소중하니까?라는 정도.


꿈을 꿨다.

나는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의식에 힘을 주자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왔다.

영혼의 모습은 내 육체였던 것과 똑같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이 날 보지 못한다는 점만 달랐다.


잠시 유체이탈을 즐기고 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친척들이 내 몸을 발견하고는 관에 넣어 화장터에 보냈다.

이를 말리려 달려갔지만 눈앞에 생긴 두꺼운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어 갈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악다구니를 써봐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화장터에 들어간 내 몸은 몇 초 되지 않아 하얀 재로 변해있었다.


절망스러웠다.

내 의식이 아무리 또렷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말 그대로 삭제된다니.

그게 이렇게 허무하고 쉽게 일어나는 일이라니.

내가 쌓아 온 지식과 경험과 추억들이 모두 없어지는 게 가능하냔 말이다.


잠에서 깼다.

곰곰이 꿈에 대해서 생각한 뒤에야 비로소 생명의 의미를 깨달았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모두 알지만 대부분은 나와 관련 없는 일처럼 느껴지곤 한다.

내가 70대 80대를 지나 꼬꼬 할아버지가 됐을 때나 겨우 만날 것만 같다.

하지만 죽음은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 순간 나의 모든 것이 삭제되어 버린다.


이르자면 생명은,

무작위의 확률로 언제든 눌려지는 포맷 버튼 위에서 존재한다.

당장 호흡하는 매 순간이 기적이라는 뜻이다.

끝없는 암흑과 먼지로 가득 찬 우주에서 생명을 영위하는 것보다 축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기적의 시간 속에서 끝없이 진리를 찾아나가는 여정.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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