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장 13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양면적인 특성을 가진다.
자수성가해 부모님의 빚을 갚아드렸다며 활짝 웃는 연예인의 인터뷰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반면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울적하다.
이렇듯 돈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돈은 우리 가족을 죽이려 했다.
아버지에게 직장 동료는 배추밭 투자를 제안했다.
투자금의 일정 퍼센트를 매달 배당금으로 돌려주겠다는 전형적인 폰지사기였다.
배추밭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수억 원을 잃은 뒤였다.
혼자 끙끙 앓던 아버지는 몇 개월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가족에 터놓으셨다.
매달 쌓여가는 카드 빚과 생계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바람에 전세 대출 연장까지 막힌다면 꼼짝없이 떠돌이 신세가 될 판이었다.
사기꾼은 신용불량자 상태로 이리저리 차명계좌만 이용하는 상태라 돈을 돌려받기도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눈물을 보이며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잠에 들려했으나 아버지처럼 똑똑한 분이 왜 사기를 당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몇 시간을 뒤척거렸다.
평소 물욕도 없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생활비가 부족해서 알바도 하고 있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던 적이 있다.
이에 아버지는 “올해 말 까지는 아빠가 확실히 지원해 줄게. 아들은 공부만 열심히 해”라고 답했다.
가족을 위해, 아들을 위해, 동료를 믿었던 죄 밖에 없는 사람을 어찌 가족이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은 인간이 감당할 만한 고통만 준다고 한다.
세상엔 닉 부이치치나 오토다케처럼 영구적 신체장애를 태어났음에도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고통에 비해 ‘돈’ 문제는 원상복구가 가능하단 점에서 신이 주는 가장 약한 수준의 고통일 것이다.
비록 몇 년간은 우리 가족이 더 많은 일을 해야 될지도 모르지만, 가족 간의 사랑까지 깨질 필요까진 없다.
오히려 이 문제로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엔 출근하는 아버지를 있는 힘껏 안아드렸다.
“고마워요. 우리 곁에 남아주셔서.”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끌어안고 아무 말 없이 한동안을 그대로 서있었다.
돈은 우리 가족을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