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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Mar 01. 2024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인생과 연습.

이른 아침이라 할 수 있는 7시 반에 스타벅스엘 왔는데 내가 앉고 싶었던 자리는 벌써 누군가 앉았다.

슬쩍 지나며 보니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연필 들고 줄을 그으며 뭔가 공부하는데…거 참…공부하는데 뭐 하러 창밖 풍경보이는 좋은 자리를 앉나?

살짝 흘기며 구석지 자리에 가서 앉는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오면 예배당 바로 옆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굽는 빵냄새가 너무 좋다. 세상에서 제일 감미로운 향기는 새벽 골목에 날리는 갓 구운 빵냄새, 고소한 버터향이 아닐까?

베이글과 커피를 마시며 가지고 나온 책을 펼친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하고 물음표가 붙어야 할 것 같은데 물음표가 없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흉내 낸 제목 같은데…

알랭 드 보통이 프루스트에 대해서 쓴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별로 안 좋아했다.

잡풀처럼 무성한 그의 서술사이로 프루스트에 대한 것만 건져서 읽어보기로 한다.


1922년 파리의 신문 <비타협>에서 기고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 세계가 종말을 고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 대륙의 거대한 일부분이 파괴될 것이며 그리하여 갑작스럽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죽게 될 운명에 처할 것이 틀림없다고 어느 미국 과학자가 발표했다. 만약 이 예측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대재난이 발생하는 순간까지 사람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


당시 명망 있는 사람들이 대답한 바는 ‘거의 사람들은 이승의 쾌락에 너무 많이 정신을 빼앗겨 그들의 영혼을 사후세계에 대비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고들 말했다.

그때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프루스트도 이 질문에 답변을 보냈다.


-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삶은 갑자기 놀라운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계획, 여행, 연애, 연구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미래에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끝없이 미루는 우리의 게으름은 이것들을 숨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루기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하는 위협이 생기면, 삶은 다시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아! 대재난이 이번에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의 새로운 갤러리를 방문하고, X양의 발아래 우리를 던지고, 인도로 여행을 하고야 말 텐데요. 대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것도 하지 않을 테지요. 왜냐하면 다시 정상적인 삶의 심정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요. 거기서는 무관심이 소망을 죽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삶을 사랑하기 위해 대재난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이고, 죽음이 오늘 저녁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


프루스트가 자신의 삶을 사랑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알랭드 보통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여행하기에는 너무 허약했고 10년이 넘도록 박물관을 가지 않았고 X양은커녕 A에서 Z양까지 그 누구에게도 몸을 던진 적이 없다.


나는 확실한 대재앙이 예고된다면 무얼 할까?

아마 부들부들 떨며 기도하다가 … 겁 많은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순간에 피아노를 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프루스트를 읽었으면 좋겠다.


지난주 내 평생 처음으로 독주라는 것을 해봤다. 다니던 인근 대학 평생교육원 음악캠프 수료음악회에서.

그동안 악기나 중창단 반주는 해봤지만 정식으로 독주를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친 곡은 쇼팽의 발라드 1번. 어마무시한 곡이다. 작년 2분기 동안 이 곡을 배웠다.

단 한 페이지도 내 능력으로 해볼 만한 페이지가 없었다. 피지컬적으로 손이 닿지 않는 화음 건반, 옥타브로 날아가는 페세지를 구사하기엔 너무 짧아 경직되어 버리는 손가락들.

정말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또 했다. 하면서 놀라게 되는 것은 연습을 하면 그 어려운 부분들이 조금씩 된다는 것이다. 조금씩 되기 때문에 계속 연습을 하게 된다. 물론 테크닉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려하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되어가긴 한다. 그걸 무엇보다 잘 아시는 분이 선생님이기 때문에 선생님 앞에서는 아무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나는 흔히 이런 피지컬적 테크닉은 때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나이에도 뭔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번 무대는 암보가 관건이었다. 부분별로 잘라서 해보면 다 외워져 있는데 전체적으로 연주하면 어디서건 한 번씩 막힌다. 갑자기 손가락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길을 잃는데 길을 찾아낼 수가 없다. 마치 잘 가다가 내 발이 어떻게 움직이더라… 하고 의식을 하면 발들이 꼬인다는 지네 다리들처럼 손이 꼬여버린다. 피아노 악보는 너무 음이 많아서 그 현란한 음들의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얼른 나갈 길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것이 제일 두려웠다. 가다가 멈출까 봐. 다른 참가자들은 다들 악보를 보고 연주했다. 리허설때,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의외의 지점에서 멈춰 버렸다. 결국 음을 찾아내지 못해 악보를 펼쳐야 했다. 리허설 지도 교수님도 심리적 안정을 위해 악보를 펼쳐놓고 하는 것도 괜찮다고 하셨다. 하지만 좀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그동안 그리 외웠건만… 도대체 복병처럼 어디서 길을 잃을지 스스로 예측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 내 앞순서의 연주를 들으면서까지 악보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그냥 악보를 두고 올라갔다. 중간중간 떨림증으로 틀리게 친 곳은 있었지만 멈춰 선 곳은 없었다. 마지막 음을 치고 나서 손과 발을 피아노에서 떼는 순간 나는 마치 인생의 어떤 다른 국면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인생 숱하게 다녔던 그 많은 음악회들. 내 인생과는 상관없는 화려한 피아니스트들이 서는 무대들. 매끈하게 음악을 연주하는 많은 천재들. 감히 꿈꾼다고도 할 수 없는 아스라이 먼 세계로만 생각했던 그런 연주를 해 본 것이다. 물론 무대는 작은 음악관의 작은 홀이고 참가자 대 여섯 명과 가족 몇 명 또 캠프 스태프들 몇 명이 다인 관객이지만, 내게는 관객의 수와 홀의 사이즈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냥 자신과 피아노만 있는 내 우주에서 정식으로 연주를 해 본 것이다. 공손히 걸어 나가 무대 중앙에서 인사를 하고 피아노에 앉아 몸을 가다듬고 의자 위치를 잡아보고 의자에 내려진 내 자세의 편안함을 확인하고 음을 향해 손가락을 건반에 내려놓던 순간. 그리고 마지막 음을 단호히 내려치고 소리의 잔향을 거두며 손과 발을 피아노에서 떼던 순간까지 나는 나만의 세계에서 유영하듯 했다.


그날 돌아와서 저녁에 와인을 마셨다.

춥고 텅 빈 연습실에서 연습하며 상상했던, 그 연주회가 끝난 저녁이 어김없이 와서 와인을 한 잔 하며 나는 내가 기특했다.

연주회 끝나고 작은 간담회에서, 이 나이에 뭐라고 이런 걸 하며 이렇게 힘들게 연습을 하나 싶어서 캠프 참가하라고 하신 선생님을 조금 원망하기도 했는데 인생에 안 해본 것을 하는 순간 삶의 지경이 더 넓어지고 더 멀리 펼쳐지는 것 같아 감사드린다고 했다.


진심이다. 내가 육십이든 칠십이든 인생은 그 끝을 모른 채로 기다리고 있다.

어느 쪽으로 펼쳐지기를 바라느냐고 물으며 인생은 나를 향해 서있을 것이다.

내일 끝난다 하더라도 그 순간까지 내가 다다른 그 지점에 나는 만족할 것이다.


삶의 본질은 삶을 통해 깊어지라고 더 넓어지라고

그 걸음을 멈추지 말고 걷는 것에 있다고 하는 것 같다.


14년간 묵묵히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써 내려갔던 프루스트는 신문에 저 답변을 기고한 지 4개월 만에 죽었다.

어쩌면 가볍게 시작한 감기를 낫게 해 줄지 모를 주사를, 소설 쓰는데 지장을 줄 것이라고 맞지 않아 결국 폐 속의 농양이 터져 죽었다.

대재앙이 닥친다 해도 프루스트는 인도를 가지 않고, 루브르 박물관에도 가지 않고, X양에게 몸을 던지러 가지도 않고 아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썼을 것이다.


내가 무사히 연주를 마쳐서 나보다 더 신이 난 피아노 선생님은 다음 곡을 보내셨다.

리스트.

리스트라니…. 리스트가 장난인가. 악보를 보니 입이 안 다물어진다.

나는 또다시 이 연습의 굴레에 갇힐 것인가.

어쩌면 내일 세계의 종말이 와도 나는 리스트를 붓점 연습하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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