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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Apr 22. 2024

공항에서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

새벽에 빗방울 들치는 소리가 후드득 나서 창을 내다보니 거리에 비가 내리고 있다.

떠나는 날 비가 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아직 어둔 거리를 내다본다.

오랜 기간의 여행에 피로가 쌓여있다.

잠은 오히려 집에 있을 때 보다 푸지게 잘 자고 다니지만 온몸 마디마디에 피로가 쌓여있음이 느껴진다.

이러니 여행도 젊을 때가 좋은가 보다. 회복탄력성이란 것이 확실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새벽에 혹은 아침에 배낭 메고 막 거리에 나서는 그 순간은 얼마나 설레고 좋은지. 중독되는 순간은 바로 그 순간이다. 그 낯선 공기와 바람과 새소리가 내 존재 어딘가에 박혀 있다가 여행을 잊을만한 때가 되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다닐 수 있을까. 이제 진짜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시기가 왔는데 언제까지 이 설렘이 나를 이끌 수 있을까.


새로 도착할 도시의 시내버스는 지하철은 어떻게 타는지 알아보느라 일찍 도착한 공항에서도 시간은 금방 간다.

지금까지 썼던 이 도시의 교통권을 버리고 새로운 교통권을 익혀 나가야 한다. 티켓은 터치만 하는 건지 개찰구에 집어넣는 시스템인지 운전사가 현금도 받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을수록 도움이 된다.

아아 ᆢ귀챦은거 싫어하는데 이 귀찮은 것을 다 알아야 하고 떠나면 다 버려야 한다.

그라나다에서 어느 저녁 이십여분 걸어가 아시안 마트에서 고추장 한 통을 사 와서 뒷날 비빔밥 해 먹고 지금까지 가지고 다니다 오늘 숙소에 두고 왔다.

마트에서 파는 현지식 컵누들에 고추장을 풀어 먹으니 국물이 우리나라 컵라면 국물보다 훨씬 맛있다.

오늘 그 고추장통을 두고 오려니 어찌나 아까운지 망연히 만지작 거리다 어쩔 수 없이 두고 왔다. 어쩌자고 그 흔한 고추장 튜브하나를 안 사 왔을까.

한식당까지 굳이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가끔 매운 컵라면 한 번씩은 먹어줘야 속이 개운해진다.


책은 뭐하러 꼭 한두권씩 챙겨올까

떠나기전 짜투리시간에 읽자고 또 하루 하루 읽어야할 분량만치 성경도 읽자고 생각했건만 여행이 흐름에 따라 나는 그날 그날 사는 인생이 된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고 묵상할것도 없는 가벼운 밑그림 스케치같은 시간들을 산다. 간신히 매일 저녁 그 날의 내용을 밴드에 정리해 두는걸로 뇌는 쓰임을 다한다.더 이상 쓸 머리가 없다. 책 읽을 머리도.

그래서 바르셀로나 어느 거리에서 마주 친 독서하는 노숙자분 사진을 몰래 존경심을 가지고 찍었다.

피카소의 책읽는 사람들 시리즈도.

피카소는 책 읽는 여동생, 어머니, 숙모등 책 읽는 사람들을 많이 그려놨다.

양심이 찔린걸까. 이리 시간을 보내도 되나 하는 불안함이 있는걸까.

여행 밑에는 뭘 하든지 불안함이 한 스푼 깔려있는 것 같다.


공항은 늘 분주하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또 가보자.

새로운 곳엔 또 뭐가 있어 피로한 두 다리를 다시 걷게 할 것인지 ᆢ


교외로 나가는 기차타려 도착한 그라시아 역앞,

꽃단장한 카사 바트요.

곧 있을 축제로 이리 단장했단다.

단장 하기전 솔직한 모습도 보고 이리 화장한 모습도 봤으니 하우 럭키 위 아!

가우디 가우디 말로만 듣던 가우디를 이리 뵈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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