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소설

by Hozi

서기 2125년의 서울,

9호선 급행열차 안의 풍경은 정지 화면과 같았다.


승객들의 목 뒤에 삽입된 ‘옵티마(Optima)’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그들의 인지 부하를 제어했다.


시스템의 논리는 명쾌했다.

‘이동은 목적지에 닿기 위한 비용일 뿐, 그 자체로 가치는 없다.’

사람들은 열차에 오르는 순간 ‘과정 삭제 모드’로 진입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의 불필요한 기억,

비좁은 틈새에서 겪는 타인의 체온과 불쾌한 소음은

뇌 용량을 아끼기 위해 실시간으로 휘발되었다.


그들에게 인생은 ‘서 있는 상태’에서 ‘앉아 있는 상태’로,

다시 ‘사무실 책상 앞’으로 건너뛰는 불연속적인 결과값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하자 시스템의 연산이 바빠졌다.

수십 명의 육체가 로그아웃하며 빈자리가 생겨났고,

남아있는 자들의 옵티마는 가장 적은 칼로리를 소모해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좌표’를 계산해 근육에 신호를 보냈다.


찰나의 순간, 내 앞에도 네 개의 빈자리가 파랗게 점등되었다.

시스템은 내게 0.3미터 앞의 자리에 앉으라고 명령하며 내 망막에 화살표를 띄웠다.


하지만 나는 그 지독한 효율의 궤적을 거부하고 링크를 끊었다.

내 목표는 열차 칸 맨 끝,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좌석이었다.


옵티마가 ‘비효율적 오류’라며 경고등을 울렸지만,

나는 수동 모드의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첫 발을 뗐다.


시스템에 동기화된 사람들은 자리에 ‘박히는’ 순간

그곳까지 이동한 기억을 삭제당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구두 굽이 열차 바닥에 닿을 때의 둔탁한 진동,

균형을 잡기 위해 긴장하는 종아리 근육의 떨림,

그리고 비어있는 끝자리를 향해 공기를 가르고 나아가는 이 기묘한 고립감.


나에게는 이 ‘네 걸음’이 필요했다.

목적지에 도달해 얻게 될 안락함보다,

그곳에 닿기 위해 내가 내딛는 이 찰나의 과정들이야말로

내가 아직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나는 삭제되지 않을 기억의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뇌새김하며,

느리지만 선명하게 나의 영토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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