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길고양이 입양까지 꽤 많은 시간을 고민에 고민을 반복했다.
그저 예쁜 장난감을 샀다가 질리면 버리는 것 같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더하기는 무슨. 내가 이렇게 추운데, 쟨 먹지도 못하고 진짜 올겨울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아 몰라 하고 데려온 게 사실 더 컸다.
고양이에게 평생 행복하게 해 주마 하고 데려온 건 아니었고, 최고의 집사는 못되어줘도 밥 굶기지 않고 추위에 떨게 하진 않게 해 주마 하고 입양한 거였다.
혹시 나처럼 길고양이를 입양하려는 사람들과 혹시나 그저 귀여워 고양이를 입양하려는 예비 집사들에게 작은 경고? 의 메시지를 전하려 초보 집사가 길고양이와 동거하며 겪은 난감한 상황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병원비
기본 검사비와 중성화 수술까지 고려하면 어느 정도 들겠다 예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고양이 병원비로만 약 75만 원 정도가 들었다.(입양한 지 약 한 달간) 앞으로도 사료, 모래값 등등 합하면 이제 시작이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 생명의 무게는 가벼이 볼 것이 아니다.
2. 모든 것이 고양이 스크레쳐
고양이가 스트레스 푸는 방법 중 하나가 발톱을 긁는 거라 해서 진작에 스크레쳐를 구비해뒀다. 그러나 바니는 스크레쳐보다 가죽소파, Lee의 백팩, 거실 카펫을 애용한다.
"그래, 소파 바꿀 때 됐다. 신나게 긁어라! 싸구려 백팩이다 걱정마라! 카펫쯤이야 긁어도 괜찮다!" 하고 놔두긴 하는데 맘속으로 제발 옷은 건드리지 말아 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3. 가정집의 사막화
고양이와 동거한 이후로는 카펫이며 온 집안에 모래가 굴러다닌다. 눈에 띌 때마다 쓸고 치우기는 하지만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래를 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뭔가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보면 모래가 있다. 고양이 발바닥 사이사이에 모래가 끼여서 돌아다니며 떨어지기도 하지만, 내 침대 위에 누워 신나게 발바닥 그루밍을 하다 침대 위에 떨구고 가나보다. 처음엔 영 찜찜했는데 그새 무뎌졌는지 툭툭 털어내곤 잔다.
4. 밤잠 없는 고양이 그리고 우다다
기본적으로 고양이는 야행성이다. 그래도 집에서 생활하면 점차 사람처럼 생활패턴이 바뀐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밤에 어디 올라갔다 쿵! 탁! 하고 뛰어내리는 정도는 괜찮은데, 다다다다 하고 거실을 뛰어다닐 때가 있다. 바니는 겁쟁이에 소심한 성격인데 나와 둘이 있거나 밤만 되면 그렇게 용감해질 수가 없다. 혼자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것 마냥 스툴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려 소파 등받이를 타고 식탁까지 점프해서 다다다다 뛰는데 그 녀석 새벽 운동 덕에 꼭 한 번씩 잠에서 깬다. 덕분에 노력 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간다.
5. 나의 점프 실력을 보여주마.
이제 막 8개월(추정개월)이 되어가는 바니는 뒷다리 힘이 부쩍 늘어 의자, 소파, 식탁 등등을 점령하더니, 드디어 싱크대 옆 아일랜드까지 단번에 뛰어올라 약통을 다 떨어뜨렸다. 이젠 물품들을 더 높은 곳으로 옮기거나 모두 안쪽으로 넣어야 한다.
6. 최고급 장난감은 필요 없다! 휴지만 달라!
바니는 길에서 생활했던 야생 습성이 남아 있을 것 같아 다양한 장난감을 구비해서 열렬히 놀아주고 스크레쳐도 준비해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휴지였다. 휴지만 보면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어 스크레쳐 마냥 발톱으로 파내고 심지어 이빨로 물어뜯기까지 했다. 한편으론 그래! 네가 두루마리 휴지로 만족해서 고맙다. 크리넥스 티슈 아닌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7. 고양이 성인식, 발정이 왔다
와우. 발정에 대해서는 다시 제대로 한번 이야기해야 한다. 고양이 발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건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했다. 겨우 8개월 정도 된 바니가 발정이 오자 애교도 엄청 늘고 목소리도 무진장 커졌다. 특히 밤마다 새벽마다 너무 울어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자 바니도 힘들고 우리도 힘들어서 중성화 수술을 계획했다. 결혼이라도 한번 시켜주고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직 어려서 임신하게 되면 바니 몸에도 좋지 않다고 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수술을 진행키로 했다.
8. 고양이와 한집에 있으면 일을 할 수 없다.
매일 아침 사료와 물을 채워주고, 화장실 청소하고 장난감으로 잠시 놀아 준 후 내 일을 하려고 하면 꼭 내 옆으로 와서 냥냥 거린다. 그럼 난 얘가 뭘 해달라는 건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서 눈을 마주치고 얘기한다. "냥?" 그럼 바니가 또 "냥" 그럼 내가 또 "냥?" 이걸 한 열 번 반복한 뒤 너무 귀여워서 쓰담쓰담해주면 발라당 누워서 더 만져달라고 뒹굴거린다. 그럼 도저히 못 본 척할 수 없어 폭풍 쓰담쓰담하게 되고 그러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가버린다. 어딜 가던 졸졸 따라다니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 앞에서 내가 나오길 기다린다. 고양이와 함께 있으면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간 듯 시간이 금세 흐르고 내가 뭘 하려고 했던지 잊게 된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고양이를 키우며 겪은 불편한 점을 나열했다. 앞으로 또 어떤 소소한 문제들이 일상 앞에 펼쳐질지 모른다.
예비 집사들에게 미리 경고하는데, 고양이와의 생활은 일상에 지장이 많이 생기고, 금전적으로도 부담되며 특히 심장에 위험한 동물이다.(너무 귀여워서)
아. 그리고 털 날림도 심하다. 털 특집도 한번 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내게 바니는 선물이다. 우연한 묘연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2.6kg의 이 작은 고양이가 내게는 2.6톤의 행복을 전해준다. 기분이 다운될 때 가만히 녀석을 쓰다듬으면 작게 골골 송을 불러주는데 그렇게 큰 위안이 될 수 없다. 녀석의 가슴에 손을 가만히 올리면 앞발로 내손을 감싸는데 그 느낌이 정말 좋다.
바니의 낮잠 타임에 살짝 편승해 같이 나란히 침대에 누우면 나를 온전히 믿고 잠이 드는 그 눈빛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니 예비 집사님들이여. 심사숙고하여 꼭 고양이를 키워보시기를!
우주에서 가장 귀여운 생명체를 만나게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