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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Dec 16. 2023

그 남자 그 여자



밤 11시,

남자는 안방에서 불을 환히 밝힌 채 술상을 펼쳐 놓고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다. 조그마한 상 위엔 먹다 남은 족발과 김치통, 그리고 작은 단지모양의 중국술이 멋대로 놓여있다. 게임하는 중간중간 술을 잔에 따라서는 한 입에 털어 넣고 족발 한 점을 얼른 욱여넣는다. 그리고는 이내 게임 화면 속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베란다와 거실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빨래를 너는 여자의 눈총 따윈 안중에도 없는듯하다.

그 어수선함 속에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방 한 잠들어있고 아무도 보지 않는 티브이만 요란하게 떠들고 있다.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아슬아슬하게 들려오건만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게임 속에 머물러있다. 리모컨을 찾아 티브이를 끄는 여자의 화난 움직임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상 그만 치우면 안 돼? 애가 저렇게 자고 있는데 불이라도 좀 꺼주던가..."


그제야  느릿느릿 고개를 들고 술상 앞에 버티고 선 여자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더니 이내 게임 속 화면으로 시선을 거두는 남자..


"불... 꺼."


묘하게 화가 난듯한 남자의 말투다. 여자의 얼굴 위로 한 조각 비웃음이 스쳐가더니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안방 불이 꺼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은 조금 전의 팽팽한 분위기를 한결 누그려뜨린듯하다. 거실조명이 비집고 들어 와 남자의 술상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그 위로 떡하니 버티고 선 여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있다.


"상 언제 치울 건데? 지금이 몆 신지는 알아?"


피곤에 찌든 여자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자빠져 자."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남자의 그 말에 순간 여자는 할 말을 잃었다. 숨이 턱 막혀와서 뭘 어떻게 반격해야 할지.. 그럴 가치도 없는 말인 건 알겠는데 벌써 이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는 걸 상기하는 순간 여자는 분노했다.


"자빠져 자? 술상을 치워야 이불을 깔고 자빠져 자든지 말든지 할거 아니냐고!"


그러면서 이불장에서 이불을 꺼내 휙휙 집어던지면서 여자는 생각했다. 저 지긋지긋한 술상도 이렇게 마구 던져버렸으면 좋겠다... 저 인간 하고 이판사판 한바탕 몸싸움이라도 벌여봤으면 적어도 속은 문드러지진 않을 텐데...

그렇지만 잠들어있는 아이와 건넌방에서 시험공부하는 큰아이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소리도 나지 않는 만만한 이불에 그저 한바탕 화풀이를 하는 수밖에.



남자는 슬며시 자리를 뜨고 술상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방에 여자는 넋 놓고 앉아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내 삶은 겨우 이것밖에 안되는 걸까..

그와 다를 바 없는 수준 떨어지는 말과 행동  어쩌다 나는 이렇게 된 걸까.

이 진창길을 과연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까.



여자는 조그맣게 되뇐다.

자빠져 자!

희미한 웃음뒤로 깊은 슬픔이 드리운다.




(다음에 계속--)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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