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2
어린 시절 나는 여기저기 참 많이도 아팠다. 자잘 자잘하게.
늘 입병을 달고 살았고 툭하면 다래끼에, 조금만 피곤해도 편도가 부었다.
입병이나 다래끼는 겉으로 드러나서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알게 되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은 아무리 아파도 어른들한테 얘기를 하지 않아서 병을 더 키운 적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중이염을 앓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귓속에서 진물 같은 뭔가가 조금씩 흘러나오면서 때때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걱정만 한 보따리 끌어안은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강의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면서 귀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불안한 나날 속에서도 차츰 적응해나갔다.
잘 안 들릴 땐 손으로 귀를 눌렀다 떼였다를 반복하면 어느새 들리는 시점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수할 때 귀를 열심히 씻기도 하고 나름 이겨내려고 애를 썼지만 생각보다 증상은 잘 낫지 않았다. 그 증상이 저절로 낫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어느 날,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서 조금씩 긁기 시작한 게 점점 피가 나고 진물이 흐르더니 급기야 피고름까지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도 역시 나는 아프다는 얘길 하지 않았지만 결국 몰래 숨겨둔 빨래더미 속에서 그 흔적을 들키게 되면서 식구들 모두가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넌 어쩜 그리 독하냐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할거 아니냐고 넋두리를 하셨다. 동네 한의사를 모셔다 진맥을 하고 한약 한재 지어서 먹은 뒤로 나는 살도 좀 붙고 한동안 아프지 않게 되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픈 걸 얘기하는 게 누군가에게 엄청난 걱정과 불편함을 준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입만 열면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된 게 어쩌면 그때 못한 한풀이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도 그런 생각 때문에 아픈걸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한 걸까?
엉덩이에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종기를 키우는 동안 나는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다. 종기 안에 고름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어서 걷기도 힘들어졌을 때에야 남편은 아프다는 얘기를 했다.
그게 이틀 전이었고 드디어 오늘 외과에 가서 수술 일정을 잡고 왔다. 2박 3일 동안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라는 의사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남편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는 것 같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람이다. 가게 장사 하루라도 쉬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몇 개월을 내리 쉬지도 않고 일하더니 결국 터질게 터진 것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 참에 몸도, 마음도, 생각도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스로를 잘 돌보는 어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이제부터라도.
#돌봄 #잔병치레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