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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동별곡 Dec 19. 2018

아내도 자식도 친구도 없이 홀로 가 본 축제라니!

[마을탐사 프로젝트] 마을기획 쇼케이스 참여후기_ 혼축이지만 괜찮아


가을 하늘이 맑아서 그런지 평소에도 많아 보이는 서울숲 이용자들이 유난히 더 많아 보였다. 서울숲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올라오면서 역 밖 풍경이 느린 영상처럼 다가오자, ‘아이구야...’ 나는 바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어쩌다보니 축제 취재를 맡아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대학 때부터 난 축제를 싫어했다. 그냥 때 되면 의미 없이 하는 그 수많은 축제들이 싫었었다. 그 무성의함이 싫었었다. 새벽에 쓰는 지면을 빌어 솔직히 말하면 기획의도를 대충 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돗자리 페스타’라는 이름도 당최 무슨 의미인지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워크숍에 참여한 아이들의 집중한 눈빛을 보라!


이런! 너무 즐겨버렸다..





갔다.



 아담한 야외무대에서 퓨전 판소리극 ‘미스터 성동’이 한창 하고 있어 잠시 앉아 보았다. ‘이성계’라기엔 조금 고운 젊은이가 방자에게 활을 겨눈다. ‘오 이런 액션이라니!’ 가만 보니 ‘살곶이’ 지명의 유래에 대한 연출인가보다. 호기심이 더해져 집중해보려고 하지만 옆에 앉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방해되어 오래 앉아있진 못했다.


 발길을 돌려 뒤쪽에 위치한 부스를 탐색했다. 문화다양성 정책에 대한 투표, 풍선다트, 보드게임, 켈리그래피로 구성된 전체 부스에 참여하고 스탬프를 다 받으면 선물을 준다고 해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줄을 섰다. 마치 가지런한 말줄임표 사이에 큰 잉크 떨어뜨린 것처럼. 내 앞에 아이와 내 뒤의 아이는 가운데 선 덩치 큰 아저씨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서로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나는 꽤 큰 장벽이었나 보다. 당황하지 않고 스탬프 종이를 바싹 움켜쥐었다.


 결국 풍선다트는 참가자가 많아 포기했지만 아내에게 주기 위해 ‘힘내’라고 써왔던 켈리그래피는 목적대로 아내의 감동의 눈물 한 방울과 인스타그램의 한마디까지 얻어내면서 좋은 결실을 맺었다. 기분이 좋아 내년 문화다양성 주간에 도착한다는 편지까지 썼다는 걸 실토할 뻔 했지만 힘들게 삼켜냈다. 


 한 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사생각 안하고 놀았다. 20년간 유지했던 축제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쉽게 무너진 것 같아 자존심은 조금 상했지만, 즐긴 건 즐긴 거니까.



서울숲 '돗자리 페스타'의 다양한 체험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소극장에 온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기획은 극단 하땅세의 워크숍이었다. 아동극처럼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극이 끝난 후 체험부스에서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퍼포먼스는 조금 과장하자면 1km반경 내의 모든 동심들에게 열화와 같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관객참여를 고민하는 문화기획자들에게도 훌륭한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극단 하땅세는 연극 중에서도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극단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 극단 하땅세의 연극은 사람 목이 날아다니고 피가 튀는 장면까지도 생생하게 그려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하지만 극단 내부의 지속적인 회의를 거쳐 아동극과 미술체험까지 훌륭하게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 극단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공연도 흥미로운 기획이 이어졌다. ‘저마다의 무용’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사주명리에 기반 한 개인맞춤형 춤 공연이라니. 하필 밝넝쿨 무용가는 긴 머리를 뒤로 곱게 묶어 무용가와 용한 점쟁이의 경계선에 선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사주풀이에 따르면 태어난 연, 월, 시에는 ‘원국’이라고 하는 에너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에너지에 맞는 춤동작을 만들어 추어보면서 개인맞춤형 춤이 완성되었다.



극단 하땅세의 10분 공연을 보고 어울리는 소품 만들기 워크숍


참여자들의 사주명리에 맞는 춤을 처방해주는 밝넝쿨 무용가





가벼이 퇴장하다.



 끊이지 않는 춤사위들을 뒤로하며 퇴장하는 길에 마을기획 앙케이트에 스티커도 붙여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체험거리가 많았고 무엇보다 말초적인 자극에 치중되지 않은 공연 같은 축제여서 즐길만했다. 차라리 축제라는 말을 과감히 버리고 공연이나 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더욱 좋았겠다. 조금 더 욕심내본다면 향후 ‘다양성동’에 맞는 소공연이나 체험도 하나쯤 추가되면 좋겠다.


 이쯤 되면 서두에 취했던 시니컬한 태도가 약간은 민망해질 정도로 칭찬일색의 글이지만 어찌하랴. 나의 흥미도 아내의 감동도 만들어 냈던 시간이었는데.



내년에 받아보게 될 편지를 쓰는 아이들


마을탐사 프로젝트로 완성된 8가지 마을기획 투표현장. 나도 표를 행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글    이성일

편집 손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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