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휴양지 '발리'부터 떠올릴 것이다. (간혹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혼동하는 사람' 들도 있는데 예전에 나도 그랬었다) 어쨌든 발리를 여행한 사람 중에 싫었다고 말했던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확실히 발리는 인도네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휴양& 관광지이기는 한 듯하다. 그렇지만 아름다움 이면에는 늘 숨겨진 불편한 진실도 있는 편이다. 대게는 가려져 있어서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이 21세기의 현실이기도 하다.
- 발리에서 버스로 5시간, 또다시 배를 타고 1시간 거리에
발리가 있는 덴파사르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끝낸 후에 버스로 약 5시간을 달리면 자바섬으로 들어가는 항구에 도착을 한다. 면적이 넓은 인도네시아에서 버스로 5시간은 가까운 편에 속하지만 자바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순간 같은 나라에서도 시차가 바뀐다.
그리고 달라진 시차만큼이나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를 한다.
더 이상 발리에서 보았던 단정한 용모의 직원들도, 기타를 치며 흥을 돋우던 거리의 음악가들도 없다. 그저 적막한 거리만이 우릴 맞이 할 뿐이다.
- 바뉴왕이 카와이젠 산 '유황 운반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지옥에 가서도 노동을 해야 한다면?
어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유황 나르는 노동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 어깨가 찢어질 것 같은고통과 방독면 하나 없이 매캐한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화산 속으로 들어가 유황을 채취하는 행위는 신체의 수명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직업이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전혀 이질감이 없을 정도이다. 하면 할수록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는 직업인 셈이다.
- 평균 수명 40세, 유황 운반이 위험한 이유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그들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사진 출처 : 인도네시아 : 카와이젠 유황광산 : 네이버 블로그
첫 번째. 보호장비 & 방독면도 없는 노동자들의 하루
이곳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면서 항상 위험한 가스가 끊임없이 분출이 되고 있지만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유황을 채취한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비교적 떨어진 위치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는데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과 취재진들이다. 물론 방독면을 쓴 채로 말이다. 그들과 우리들 사이에는 미묘한 적막함 사이로 이동할 때 바구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안전화 대신 슬리퍼를 신고 가파른 돌산을 오르는 노동자들>
두 번째. 어깨에 피멍이 들어가면서 들고 내려온 유황의 무게는?
해외봉사 활동을 명분으로 간 것이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그들을 도와야만 했고 또한 돕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바구니를 드는 것만으로도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유황을 옮겨 담아야 그들을 도울 수 있었기에 '내 자존심도 지키면서 그들을 도울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의 양을 담고 출발한 지 약 10여분. 바구니와 어깨와 맞닿는 부위는 수건을 받쳤음에도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를 만큼 쉼과 이동을 반복하니 어느덧 내가 들고 내려온 유황의 무게를 확인 후에 정산을 받는 곳에 다다르었다. 그러나 이곳은 겨우 산 중턱일 뿐이었다.
<2011년 MBC 프라임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80kg가 넘는 유황 바구니를 드는 장면을 일부 편집했다>
유황 15kg, 나의 노동 가치는 한화로 약 1,200원
운반이 끝난 후 어깨를 살펴보니 말 그대로 피멍과 붓기가 가득했지만 그 대가는 약값도 안 되는 돈 1,200원.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1,200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평균 70 ~ 80kg 되는 양을 하루에 2번 총 150kg 정도를 운반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 일당으로 버는 돈은 우리나라 시급보다 조금 많은 편이다.
"다른 일을 찾으면 안 되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알바몬에서 검색을 해서 내 입맛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도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일자리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유명 휴양지 발리나 수도 자카르타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채취된 유황은 어디에 쓰일까?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소비재나 공산품에 원재료로 많이 사용되는데 특히 화장품에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마디로 누군가의 수명과 맞바꾼 유황은 누군가의 피부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미안해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어쨌든 그들에게는 유황 운반이 그나마 한줄기 빛이고 그렇게 자녀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역한 냄새와 어깨의 통증보다 더 힘든 건 아버지라는 삶의 무게
앞서 말했지만 그들이 이렇게까지 이 일을 하는 이유 또한 본인보다는 자식이 본인과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직업의 귀천은 없지만 노동의 깊이는 있는 것이다. 유황 운반이 얼마나 힘든 일임은 그들이 제일 잘 알 것이니 어떻게든 대물림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오려고 하는 이유를 조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던 이민 1세대들과 교차한다. 결국 그때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인도네시아 상황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말이다.
P.S
바뉴왕이는 해외 봉사활동으로 2011년과 2012년 그리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서 2018년 배낭여행으로 한번 더 방문했습니다. 세 번의 방문 중 유황 운반은 딱 하루였지만 제 삶에서 제일 힘들었던 경험 TOP3 (화생방, 비수면 대장내시경 그리고 유황 운반) 안에 들어가는 극한의 경험이었기에 글로나마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덧붙이자면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시선에서 그들에게 동일한 잣대를 내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계층 간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의 가장 큰 원인이 서로 성장했던 시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은 불과 70년 전이었고 세계에서 제일 제일 가난했던 대한민국에서 성장한 세대와 삐삐와 2g 폰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영상으로 찾아보는 세대와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인도네시아 또한 그들의 시공간이 있고 그것이 우리 기준에서만 보게 되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저라는 사람도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그것도 자바섬 바뉴왕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공되는 동일한 교육과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면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범주 내에서 살았을 것이고 고된 노동으로 이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를 앞두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