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내 생애 첫 여행.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는 큰 도전의 아침날이 밝았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여권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증명사진은 여권 사진으로 대체할 수 없어서 따로 찍어야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야 알게 되었던 첫 여행.
첫 행선지는 도쿄
첫 행선지로 정한 도쿄행. 그러나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뿐이었다. 당시 대한항공의 절반 가격으로 갈 수 있는 유나이티드 항공사가 있었지만 아무리 클릭을 해도 '좌석 없음'이라고 뜰뿐이었다. 추석 연휴를 2개월 앞둔 시기에 저렴한 티켓 따위가 남아있을리 없었다.
결국 50만원에 대한항공으로 발권을 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 첫 번째는 여행이 확정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두 번째는 영어를 못 하면 외국 항공사를 타면 안 될 것 같다는 초보 여행꾼의 순수한? 걱정 때문이었다.
혼자라면 혼자였고, 아니라면 아니었다.
첫 해외여행임에도 동행 없이 나 홀로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주변에 해외여행을 가 본 사람도 없었고,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해외여행을 선택한 이는 더 더욱 없었다. 덕분에 온전히 혼자서 경험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이유 또한 그날 공항에 도착해서 늘어진 긴 줄을 보고서야 깨 달았다. 수화물 접수만 30분 그리고 국내선보다 엄격하게 느껴졌던 보안 검색과 여권을 보여달라는 공항 직원의 말에 그제야 여권의 용도도 이해하게 되었다.
첫 기내식
김해 공항은 그리 크지 않았기에 탑승구를 헤매는 일은 없었다. 재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시키는 대로 벨트를 착용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데 기내식이라는 것이 나왔다.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태어나서 처음 사료를 먹는 강아지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무슨 맛인지는 몰라도 맛있게 먹었다. 공짜니까.
도착 後, 미아
비행기는 큰 일? 없이 도쿄 나리타 공항에 잘 도착을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지인이 커다란 종이에 내 이름을 적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지인은 내 시야에 나타날 기미가 안 보였다.
나는 순간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으나 다행히도 그 상황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두리번거리던 찰나 누군가 뒤에서 나의 오른쪽 어깨를 툭 치는 것이 느껴졌고, 뒤를 돌아보기 전 직감적으로 지인이라는 확신을 가진채 안도의 한숨을 내 뱉으며 뒤를 돌아봤다.
지인은 나리타 공항이 2개가 있다는 것을 잊은 채, 공항에 도착해서야 스케줄을 확인하고 공항을 이동하느라 늦었다고 한다. 떠나는 사람도 마중 나온 사람도 모든 게 처음이었던 초보들은 우여곡절 끝에 도쿄에서 다시 만났다. 낯설고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이곳에서 보낼 시간 동안 지인의 존재는 소중했다.
지인은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고작 21살이었던 그녀에게 이곳 생활은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시기에 나의 방문은 꽤나 큰 환대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나도 마음의 위로가 필요해서 떠난 거였는데 말이다.
나리타 공항에서 가장 저렴하지만 그만큼 이동에 오래 걸리는 게이세이선에 탑승을 했지만 쉼 없이 떠들다 보니 금세 도쿄 시내로 도착을 했다.
숙소는 신오쿠보에 한국분이 운영하는 소위 한인 숙소였는데, 일본 특유의 아기 자기한 건물 사잇길로 들어가작은 방 하나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방에는 작은 침대와 한국으로 국제 전화를 할 수 있는 전화기가 한대 놓여 있었다. 별 볼일 없는 전화기에 안도감을 느꼈다. 금액은 하룻밤에 7만 원. 혼자 머물기에는 다소 비싼 금액이었지만 첫 여행답게 이것도 겨우 구한 선택지였다. (아참, 나는 여행 마지막날까지도 신오쿠보를 신오타쿠라고... 말실수를 하곤 했었다)
벌써, 여행 끝
군인들의 첫 휴가가 그렇듯 나의 첫 여행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첫날 저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었던 일본 라멘은 어느덧 나의 마지막 식사가 되어 버렸다.
떠나야 할, 시간
아무리 막으려 해도 밀어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한국으로 귀국이 아니라 군대로 복귀하는 공포감 같은 것이 스며들었다. 애써 격해지는 감정을 누르며 길을 나섰다. 며칠 전 '하하 호호' 신나게 타고 왔던 지하철을 이제는 역으로 변해버린 감정과 함께 탑승을 하였다. 가장 늦게 도착하는 게이세이선이었지만 기분 탓일까? 역시나 순식간에 도착해 버렸다.
처음이라서.. 생긴 일
김해 공항에서 수령했던 면세품들이 화근이었다. 기내 액체물 소지 규정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보안 검사에서 걸려 버렸다. 억울한 마음을 호소했지만 보안 직원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저 100ml라는 숫자를 보여주고 손으로 X를 그려 보여주기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화장품을 버리고 가는 것이었지만, 회사 동료의 부탁으로 구매한 고가의 화장품들이어서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그때 다행히 내 호주머니에는 약간의 잔돈이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공중전화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단어 2 ~ 3개(My Friend와 Call이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와 손짓 발짓으로 겨우 겨우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반대편 호주머니에는 혹시 몰라서 모셔둔 지인의 전화번호로 전화 연결에 성공을 했다. 불과 10여분 전 "한국에서 만나" 라고 아쉬운 이별을 했지만, 설명할 틈도 없이 화장품 더미부터 건넨 후에 나중에 한국에 올 때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잽싸게 다시 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나리타 공항은 김해공항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거대했고 나는 부지런히 뛰어야만 했다. 비행기 안에 들어서니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했다. 아마도 내가 마지막 승객이었나 보다. 거친 호흡을 정리할 틈도 없이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그리고 벨트를 착용했다. 지긋지긋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믿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기내식은 여전히 맛있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설렘보다 낯섦과 두려움이 지배했던 첫 여행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