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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독서

by 타이완짹슨

여행에 대한 열정만 가득하고 요령은 없어서 서툴던 시기가 있었다. 첫 해외여행에서는 출국 때 대리 구매했던 값비싼 화장품을 기내로 들고 타려던 우를 범하기도 했었고, 한 때 미쳐 살던 색소폰을 굳이 여행지까지 들고 간 적도 있었다. 면세품이야 몰라서 그랬다곤 하지만 색소폰은 지금 생각해 봐도 좀 과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름 버스킹이라도 한번 해 보겠다는 의도였지만 돌이켜 보면 내 실력도 용기도 너무나 부족했다. 오히려 입국 시 세관에서 해명하느라 진땀만 뺀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왜 그때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의구심 가득했던 또한 어리석게만 느껴졌던 행동들이 때로는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 맴 돌기도 하고 때로는 물과 시멘트 가루를 개어 벽돌과 함께 한층 한층 쌓아 올려진 채로 나를 마주하는 듯하다. 그렇게 쌓이고 마주한 기억들은 동시에 다음 여행을 위한 내공이 되기도 한다.


특히 '바가지 당하지 않는 법' , '사기꾼 조심하는 법' 등, 결국 경험을 통해서 나아간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여행 속 경험은 부딪혀 보며 성숙해지는 성장통과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다.


특히 여행을 하면 할수록 짐을 간소화하는 능력? 또한 일취월장하게 되는데 이는 배낭 여행족이라면 꼭 깨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화장품은 100ml 이하 소형 용기에 옮겨 담기, 속옷은 매일 손빨래를 한다는 전제하에 여벌로 1개만 준비하기, 비누 같이 무게를 잡아먹는 용품들은 현지에서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기 등 그러나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 그래서 너무 가벼워진 가방은 무언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가방이 어느 정도 무게감도 있어야 여행을 하는 느낌도 들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독서 in 여행

어느새부턴가 Wild 한 여행이 점점 힘들어져 가는 것을 느끼면서 자연스레 여행 습관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늦은 밤까지 쏘 다니는 일정보다는 일찍 들어와서 저녁에는 온전히 휴식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이가.. 꺾인 것이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충격이었지만 받아들여야만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 하는 여행지에서 저녁에 특별히 할 일이라고는 그저 휴대폰으로 쇼츠를 보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가방 한편을 차지하는 책 한 권은 알토란 같은 선물과도 같았다.


"여행까지 가서 책이야?"

누군가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평소에도 일상에 쫓겨 책 읽기가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오히려 일상을 벗어났을 때 하루에 일부분을 할애해서 읽어 보기로 했다. 단, 여행 중에는 너무 어려운 책보다는 평소 취향에 맞고 한 손에 휴대하기 편해서 들고 다니기도 좋고 가급적 여행 중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으로 말이다. '기껏 가져가서 읽지 않으면 결국 짐이었네'라는 생각은 다음번 여행에서 또다시 짐으로 분류될 뿐이었다. 그래서 들기에도 읽기에도 가벼운 책이 딱 좋다.

KakaoTalk_20250324_192249027_01.jpg <내 삶에 있어서 '울림'을 주는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독서 to 여행

한 번은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한 적이 있었다. 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이기도 한데 다름 아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라는 회고록이었다. 무려 700page에 달하는 이 책은 버락 오바마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까지 그의 일생을 아주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평소에도 존경하는 위인이었기에 그의 성장기를 읽는 내내 너무나 사실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고 그가 유년 시절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보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가 보자!"

그렇게 단 한 권의 책이 새로운 여행지로 안내를 해 주었다. 단순히 여행을 넘어서 '한 사람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결과적으로 책으로 인해서 나의 여행지가 결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여행을 통해서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여행지로 안내해 주는 또 다른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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