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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May 28. 2024

머리에 난 뾰루지

머리에 뾰루지가 났다. 나에겐 일 년에 한두 차례씩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았거나. 그런 이유라고 짐작하지만 사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냥 언제고 불현듯 찾아오는 뾰루지.


그런 두피 상태를 잊은 채 머리를 바짝 밀었다. 1년 반 정도 셀프컷을 하고 있는데, 4-6mm를 최저 마지노선으로 정해두었다. 그러다 어쩐 일인지 오늘은 3mm로 밀고 싶어서 옆을 바짝 밀었다. 그러자 벌겋게 드러나는 뾰루지.


거울을 보고 새삼 작아졌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일었다. 사람들이 흉을 보겠지는 둘째, 첫째는 내 두피 어쩌나,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그런 걱정이었다. 옷과 방, 설거지 그릇들은 매일 정리하면서 정작 내 몸은 제때 살피지 못한 탓이다.


사흘만 기다리자. 3mm가 5mm로 될 때까지. 그때가 되면 검은 머리카락이 뾰루지를 보호하고, 가릴 것이다. 어릴 때 일삼았던 손톱 비비기를 해볼 참이다. 양손의 손톱을 마주 보게 한 다음 서로 문대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고 들었다.


머리 검사가 있는 날이면 남학생들을 죄다 그렇게 손톱을 비볐다. 모두 하나같이 빠박이인 채로. 그 모습이 흡사 사이비 종교의 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학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다들 한 달이 채 되지 않고도 머리가 꽤나 길었다.


식탁에 앉아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꺼내 들었다. 머리를 자르며 부족한 나를 돌아봤는데, 칼세이건은 모르는 게 아직도 이만큼 남아 있다며 무게를 싣는다. 책 두께가 719p나 되니, 정말 무겁다. 서른넷이나 되었건 마 부족한 게, 모르는 게 이리도 많구나.


그 와중에 '약해진 모든 두피용'이라고 쓰여있는 두피 진정 토닉을 머리에 바른다. 얼굴에는 아사이베리 팩을 붙이고 essential의 음악을 튼 뒤, 코스모스의 읽다만 페이지로 책을 넘긴다. 팩이 마를 때까지 연약한 두피도, 부족한 지식도 조금이나마 채우겠구나. 그렇게 위로하며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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