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협웹툰을 보고 있다. 분량이 상당한 장르라서 30년 평생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웹툰 하나를 접하고, 거기서 이어서 이어서 몇 개의 무협 웹툰을 주행 중이다.
무협은 공통된 세계관을 공유해서 재밌다. 위키에서 한 번 훑어보니 어떠한 이야기에서든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마교 같은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 한 웹툰에서 '당가'의 모습이 알던 것과 다르게 등장했다. 당가는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집단으로 츤데레처럼 착한 사람들을 돕는 은둔 고수의 이미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마주한 당가의 모습은 무공을 이용해서 주변 지역을 장악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못된 녀석들이었다. 무협지들이 세계관의 요소만을 공유할 뿐, 각 캐릭터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령 캐릭터를 공유하더라도 당가를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견해는 사뭇 다를 것이다. 애초에 독을 쓴다는 것부터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마찬가지로 아기공룡둘리의 '고길동씨'나 포켓몬스터의 '로켓단'이 한때 이슈로 떠올랐었다. 고길동씨는 마냥 둘리를 못살게 구는 심술궂은 아저씨로 보였지만, 현실적으로 둘리를 비롯한 또치와 도우너, 그 사고뭉치들을 먹여주고 재워준 은인이다. 누구든 절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로켓단 역시 주인공인 '지우'와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우는 포켓몬들과 겸상을 하지 않지만 로켓단은 반려묘?처럼 데리고 다니는 포켓몬 '냐옹'과 항상 겸상을 한다. 심지어 힘든 순간에는 무조건 냐옹을 최우선순위로 챙기는 모습까지 보인다. 로켓단의 대사처럼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사랑과 진실을 뿌리는 집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작품들은 '주인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와 배척되는 인물들이 '나쁜 쪽'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층 더 나아가서 <진격의 거인>이나 <조커>를 본다면 주인공을 막론하고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단지 '양측'이 존재하고, 모든 인물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었을 뿐 결코 절대 선 / 절대 악이 없다.
최근 SNS를 둘러보면서 참으로 오묘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잘못이 뉴스로 등장했을 때 그 기사에 달리는 수많은 덧글들, 그 멘트들에는 '자신은 절대 선이며, 타깃은 절대 악이다'라는 관념이 묻어 있었다. 이러한 멘트들은 오프라인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는데, 누군가 타인을 욕하는 말을 들어보면 대체로 '자신은 멀쩡한데 항상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맥락이 있다.
심지어 이 글조차 '나는 그러지 않는다'라는 오만이 담겨 있다. 살면서 단 한 차례도 누군가를 비방한 적이 없는지 곱씹어 봤더니, 엄청 많았다. 고로, 나는 절대 선일 수 없다. 다만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타인과 대립할 뿐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매 순간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니 선과 악을 알 수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옳은 선택을 늘려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