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결혼 안 할래!
“엄마, 나 결혼 안 하고 평생 엄마랑 같이 살면 안 돼?”
비혼을 결심한 후 몇 번이나 엄마에게 물었던 말이다.
처음엔 단순히 엄마의 반응이 궁금해서 물었고, 나중엔 내심 엄마가 결혼을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내 딸도 시간이 흐르면 결혼은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아이고 갈 때 되면 가야지”라고 웃곤 했다.
30대가 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엄마한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고백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딸의 진지한 이야기에 엄마는 조금 놀라는 듯했지만 ‘저러다 말겠지’라며 애써 부정하고 외면했다.
1-2년 꾸준히 엄마에게 말했다. 진지한 대화를 할 기회가 될 때마다 “결혼 안 할 거야”라고. 부정하던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래도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봐야지”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요즘엔 결혼에 ‘결’ 자만 나와도 서로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물러설 수도 없고 물러날 곳도 없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엄마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 꾸역꾸역 누르고 있던 말을 내뱉는다.
“아빠랑 결혼해서 행복했어?”
엄마의 얼굴이 순간 굳어진다.
“지금 기억들은 다 미화된 거야. 정말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해?”
비수를 꽂는 말인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뾰족한 화살들이 엄마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줄 알면서도.
이미 안다. 엄마는 나와 언니가 없었다면 아빠와 지금까지 살지 않았을 거다. 결혼 생활이 행복했을 리 없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나한테 결혼을 하라고 할까.
처음에는 의아했다. 홧김에 “내가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살면 좋겠냐. 내가 엄마처럼 살기를 바라냐”라고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답답했다. 엄마의 진짜 마음을 모르니까.
좋은 사람 만나서 엄마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 아빠가 세상에 없을 때 혼자 남겨질 내가 걱정돼서 일까.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건 엄마와 아빠의 다사다난했던 결혼 생활, 그리고 우리 가정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화목하다.
내가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엄마가 이상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결혼 생활 자체가 싫다. 혼자 사는 게 좋다. 무엇보다 한 남자를 위해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여자가 결혼 후 겪어야 하는 것들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경력 단절, 독박 육아… 남성 중심으로 짜인 ‘결혼’이라는 불공평한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
엄마에겐 결혼 후 삶은 어땠을까, 어떤 의미일까.
“자식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것.”
엄마는 아빠와 결혼해서 우리를 만나 행복했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결혼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많은 감정들과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엄만 있는 힘껏 다정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사랑했고, 지금도 그 어떤 이보다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 세상에 엄마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평생 없을거다. 아무리 힘들고 도망가고 싶어도 버티고 버티면서 우리 곁에 있었다는 걸 안다.
그런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해도 될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막말까지 하면서. 그래서 너무 괴롭다. 엄마에게 했던 못된 말들이 생각나 마음이 쓰리다. 나 때문에 엄마가 슬픈 표정을 짓는 게 싫다.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가 예전보다는 마음을 살짝 내려놓은 듯하다. “언니는 너처럼 결혼 안 한다는 소리는 안 하더라”라며 웃는다.
20년, 30년 후에는 엄마와 내가 웃으면서 “그때 그랬었지”라고 말하는 날이 올까. 훗날 함께 늙어 갈 나와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행복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