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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 Jul 24. 2021

돈의 슬픔과 기쁨

나의 첫 신용카드

월급은 늘 통장을 스쳐 지나갔다.


월급날이 되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하루살이처럼 꾸역꾸역 버텨냈던 시간들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런 삶을 살다 보니 누군가가 “얼마 정도 버냐”라고 물을 때마다 주눅 들었고, 좌절했고, 슬펐다.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돈벌이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돈보다는 명예로 사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개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돈에 쫓기고 쫓기던 초년생 때, 신용카드를 생애 처음으로 만들었다. 내 의지는 아니었고, 카드 회사에 취직한 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마지못해 만들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카드 하나가 내 삶을 쥐락펴락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신용카드 덕분에 그나마 서울살이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 카드 때문에 내 삶이 더 피폐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 신용카드를 써 본 적이 없는 분들이다. 놀랍게도 무조건 현금으로 물건을 산다. 할부란 없는 삶을 사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 보니 신용카드를 제대로 쓸 줄 몰랐다. 관심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신용카드를 잘 활용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20대 중반, 신용카드를 처음 접한 나는 망설임 없이 긁고 또 긁었다. 체크카드와 달리 돈이 바로바로 빠져나가지 않으니 무서운 줄 몰랐다.


할부가 되는 건 다 할부로 돌렸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인 줄 모르고 말이다. 오랜 기간 동안 카드값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괜히 카드를 만들라고 권유했던 그 친구가 밉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걔만 아니었으면 신용카드 만들지도 않았을 텐데… 체크카드, 현금만 있어도 잘 굴러갔는데…”


아무튼, 이제는 신용카드 없이는 못 산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월급보다 카드값이 더 많았다.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숨이 턱턱 막혔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나를 카드값 굴레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준 건 코로나19로 인한 강제 집콕 생활 덕분이었다. 생활비가 많이 줄었다. 쓸데없는 소비는 안 하게 됐다. 필요한 소비를 고민했고, 환경 문제에도 조금은 눈을 뜨게 됐다. 100원이라도 가치 있는 소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렇게 할부가 0원이 되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할부를 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전셋집을 구해서 월세 값도 세이브했고, 휴대폰값도 알뜰폰으로 바꿔 요금이 1/4로 확 줄었다.


이제야 월급의 몇 프로 정도는 적금을 할 수 있게 됐다. 꿈꾸던 직장인의 삶이 드디어 나에게도 시작된 거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조금 있으니 요즘은 그리 불안하지 않다.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들을 보면 뿌듯하다.


여전히 월급이 넉넉하진 않다. 하지만 그 돈에 대한 나의 마음은 코로나 시대 이전과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돈의 기쁨과 슬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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