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죽일까 봐
늘 두려움 속에 살았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다. 단순히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살해 당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상상이 나를 늘 짓눌러왔다.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남성 가해자들은 나를 더 공포에 휩싸이게 했고 더 극단적인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현실은 어떤가. 더 끔찍하다. 뉴스에서는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넘쳐났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겪으면서 수많은 여성들은 깨달았다.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구나라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그런 범죄들을 ‘여성 혐오 범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여성 혐오 범죄’는 사실 오래전부터 여성들을 억압했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현실을 깨달은 후 난 그전과 달라졌다.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겠구나. 이건 단순히 남녀 갈등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구나. 죽지 않기 위해서 죽어라 발버둥을 쳐야 하는 일이구나. 살려면 내가 더 강해져야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수많은 다짐에도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상상들을 쉽게 지울 순 없었다. 잔상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일상생활 곳곳에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밖에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다.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화장실에는 안 갔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 화장실도 무서웠다. 불법 촬영을 하는 카메라가 있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대낮 길거리를 걷다가 누군가 나를 때리거나 죽이면 어떡하지. 밤 길거리는 더 위험하겠지, 여자 혼자 사는 집은 과연 안전할까. 누가 뒤따라오면 어쩌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공포는 잦아지지 않았다.
그렇다. 여전히 쫄보다. 그렇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진 않을 거다. 살아가야 할 용기가 생겼다. 아무리 무섭고 두려워도 더 이상은 방관자로 살지 않을 거다. 나를 위해, 모든 여성들을 위해.
묵인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야지. 앞서 용기를 냈던, 목소리를 냈던 수많은 여성들을 잊지 말아야지. 그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은 변했고, 변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