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엄마가 만들어준 평화였다. 나는 어릴 적 환경이었던 그 평화로운 아름다움이 내 평생을 지속하는 따뜻하고 행복한 정서로 배어 있는 것에 항상 감사한다."
생기신것 처럼 야물딱지게 가정을 일구고 식구들을 거두었고, 인생의 반은 또 이름난 작가로 사셨던 박완서 선생님을 생각한다.
시어머니와 다섯자녀, 친정까지 챙기면서 또 쉬지않고 글을 쓰면서도 무엇에 가장 집중해야하는지를 아셨던 분.
그래서 자녀로부터 저런 평가를 받으시는 분.
따님이 쓰신 책을 읽다가,
그 분의 따뜻하고도 치열했던 삶을 생각하다가
어영부영 그냥 눈앞에 닥친 일에만 몰두하다 시간을 보내버린,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아온 나를, 내 삶을 생각한다.
몇번 썼었나?
나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그것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그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안 살림을 하면 저절로 되는 것이 현모양처인줄 알았다.
모르기도 했었고, 몰랐으니 준비할 줄도 몰랐고, 준비도 없고 아는 것도 없었으니 잘 할수 있었을 리가.
첫 아이를 낳고 6개월 만에 시댁에서 분가를 하고 남편, 나, 아이 세 사람의 삶이 시작되었다.
Imf로 일자리가 없어 비바람을 피하고자 시작한 학습지 교사 일을 남편은 천직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학습지 교사라면 교재들고 나가서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고 각 학생에게 맞는 진도를 설정하고 교재를 신청하고 집에 온 교재 정리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채점을 해야했다(교사가 꼼꼼히 채점을 해서 빨간펜이 줄어든다고 광고하던 학습지).
밤 10시까지 수업을 하던 남편은 교재 정리나 채점을 할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남편을 너무 사랑하기도 했고, 깡마르고 허약한 남편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싶기도 했고, 세식구 단칸방의 생활이 굉장히 단조로워 시간이 펑펑 남는다고도 생각해서 채점을 자처했다.
그런데 그렇게 우습게 보면 안되는 거였다.
주5일 수업이니 월~금까지 다음날 수업을 위해 날마다 해야하는 채점에 하루평균 3~4시간이 걸렸다.(그때 3~4시간씩 오른쪽 으로 동그라미를 계속 그리다보니 어느새 어깨가 고장나 있었고 지금까지 피곤하면 오른쪽 어깨부터 아파온다.)
아이는 한참 이유식을 시작해야하는 시기였는데
남편 오기 전에 채점을 끝내야한다는 생각에 어느새 채점이 해야할 1순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이와 놀기(정서적 친밀감 쌓기. 책 읽어주기 등등),이유식 준비해서 먹이기 등은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니니 뒷전으로 밀려났다.
아이와 지내다 아이가 자는 동안 채점을?
그러지못했다.
내가 채점하는 동안 아이에겐 티브이를 틀어주었고 아이가 자는 동안엔 나도 자거나 티브이를 보며 휴식을 취했다.
아이가 낮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다시 남은 채점과 이유식준비, 저녁준비, 시장 보기, 목욕시키기.. 이런 생존과 생활에 관련한 일을 하느라 아이와 친밀한 유대를 쌓지 못했다.(지금도 히키코모리 성향의 큰 아이가 그때 티브를 보며 혼자 지내도록 방치되어서 그런건 아닌가 미안할 때가 많다)
그냥 한공간에 있기만하면 되는건줄 알았다.
그럼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성이 좋으며 내면이 따뜻한 아이로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다.
그러다 아이가 두돌이 지났을 무렵에는 아이가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정도 의사소통도 되고 독립 보행도 가능한데?
그래서 가정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월 오십 받는 알바를 시작했다.
그러곤 지금까지.
무엇이 중요한지 아무 생각이 없었구나..
라는 생각.
큰 도움이 될리 없었던 오십만원.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시기에만 누릴수 있는 시간들에, 관계에 더 충실했었어야했는데..하는 마음.
삶에는 눈에 보이는 재화나 물건보다 더 소중한게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간과했던 철없던 선택.
하다보니 재택 일을 하느라우리 집은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되지 못한게 어언 십년이 넘었다.
아이들과 24시간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게 아니다.
밥먹어. 라는 말 이외에는 한마디도 안할 때도 있다.
나름 8 시간쯤의 일을 했으니 (몸은 그다지 피곤하지 않더라도) 정신이 피폐해져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싶다는 생각이 더 많다.
아이들이 다 컸으니 괜찮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싶고 요리도 같이 해보고싶고 책도 같이 읽으며 얘기도 많이 해보고싶은데
마음만큼 안된다.
무엇보다 어서 빨리 이 재택사업을 벗어나 이제는 우리집이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되면 좋겠는데
남편의 생각이 나와 많이 다르다.
다른걸 시도했을 때 이것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있냐는거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지금 조금 어렵더라도 지나가고나면 다시 회복하는 날이 올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기다리기엔 내가 지친게 사실이다.
십년 넘게 이어진 이 삶.
아니 이십년이 넘게 이어진 우선순위가 뒤바뀐 듯한 이 삶.
더 늦기전에 바꿔보고싶은 것이 나의 허황된 꿈인가?
그래봐야 똑같이 일하는 생활일 텐데 달라지는게 있겠냐고?
그건 나도 모른다.
그러나,
지친 당신 떠나라!!!
삶을 바꾸고싶다면 사는 곳을 바꿔보라!!!
뭐 이런 말들은 한번 따라보고싶은 거다.
내 머릿속에선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남편에게 말을 꺼내면 자꾸 "싸우자!!" 톤이 된다.
그러면 남편도 싸우자!!! 방식으로 맞받아친다.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않는다.
남편은 그동안 했던 말을 도돌이처럼 한다.
내 생각을 자기 생각에 맞추려는 듯 가스라이팅을 한다.(남편이 잘쓰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 나도 써보자) 뭔가 잘못된 대화를 계속하는 듯 답답한 느낌이 드는데 멍충한 나는 또 어버버하며 제대로 내 생각을 말을 못한다.
호원숙씨는 다시 쓴다.
P.19
"엄마에 대한 예찬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녀가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어느 순간 엄마의 세계에 내가 함몰되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딸로서 엄마를 사랑하고 작가로서 존경하지만 내 생활에서 엄마의 비중이 커질수록 나 자신에 대한 욕망이 솟아올랐다."
라고.
남편의
익숙한게 좋잖아?
지금까지 쌓은 경력 소중하지않아?
남의 밑에서 일하는게 뭐가좋아. 나이들어서..
라는 말에 어쩔수 없이 수긍을 하며 사느라(내 생각이 옳은지도 모르겠고 남편의 생각과의 간극을 깰수도 없었으니) 갈등(내 쪽에서 봤을 때)속에 있었던건데.
그야말로 나는 남편의 세계에 함몰되어 있었던거여서 나의 불편한 마음은 일면 당연한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