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평화롭기를 바라지만 갈등 한번 겪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다. 젊어서는 어려움을 만나면 술을 마시는 것으로 의례껏 풀었다. 진탕 마시고 다음 날 해장만 하면 거뜬한 청춘이었기에 그 방법이 통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육아에 몰입했다. 술, 커피 등은 아예 끊고 살았다. 마시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직장생활을 뒤늦게 시작했다. 술이 당기는 일들이 나타났다.
동료 교사와의 갈등이 있었다. 그 당시 6년 차에 지나지 않았던, 내 눈에는 엄청난 선배로 보였던 동 학년 교사가 나에게 “선생님만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항상 말을 불편하게 했다. 확실한 표현은 아니면서 은근히 압박을 주는 언어를 사용했다. 나이는 있어도 사회생활 신참인 나는 억울했다. 열심히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때는 몰랐다. 잘하고 싶은 열정이 넘쳐나는 새내기 교사에겐 납득불가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공무원 조직은 잘한다고 특별히 달라지는 것이 없기에 이웃 반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매사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경계한다.
친해진 다른 교사와 퇴근길에 동료 교사를 안주 삼아 거나하게 마셨다. 오랜만에 마신 술이 몸에서 제대로 나갈 통로를 못 찾은 듯 다음날까지 취기가 남아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퇴근 시각만 기다려졌다. 그때 이후 술을 싫어한다. 어쩌다 여럿이 어울리면 분위기에 취해 한 두잔 홀짝거려도 다음날까지 연장되는 술기운은 사양하고 싶다. 잘못하다간 고민을 풀려다가 새로운 고민을 하나 더 얹는 꼴이 된다. 갈등 해결 1호로 알고 있던 술은 이렇게 내게서 버림을 받았다.
다음은 생각 없이 드라마 정주행하기다. 내가 선택하는 방법들은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회피하는 방법이다. 약간 시간을 버는 것이다. 생각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 목표이다. 갈등을 틱 던져서 저만치 내버려 둔 채 안 척 안 하고 딴 일들을 본다. 드라마에 빠져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좋은 것 같은데, 묘하게 머리가 텅 빈 느낌이 든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 뇌는 영상 보여주기를 하면 할 일이 없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빈 느낌이 싫어 결국 책을 찾는다. 주로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한 책을 읽는다. 하염없이 답을 찾을 때까지 읽기가 계속된다. 책을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정서적으로 침잠된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목적지 없는 걷기를 한다. 무작정 나가서 걷는다. 하루고 이틀이고 쭈욱 걷는다. 걸었을 뿐인데 문제를 이겨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음이 힘들 땐 몸을 움직이면 된다는 사소한 진리를 알게 되었다.
시작이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이미 해결은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걷기나 운동을 시작한다. 걷기나 운동을 하면 명료하고 맑아진 정신이 ‘그까짓 것’ 하며 문제를 코웃음 친다. 다 이겨낼 수 있는 심력이 생긴다. 그때 회피의 뒷문에서 나와 정면승부 하면 된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최근에 찾은 나만의 갈등 처리법은 오디오북 듣기다. 1.2배속 빨리 듣기다. 너무 빠르면 내용을 놓치는 것도 있어서 나에게 딱 맞는 속도를 찾은 것이 1.2배 속이다. 꼬인 문제에 대한 잡념이나 사념이 떠나지 않을 때는 마음이 힘들다. 오디오북을 들으면 그런 것들이 들어올 틈이 없어진다. 내용에 집중해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의 최애템이다. 사념이 들어올 자투리 시간을 오디오북이 다 메꾸고 있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볼 시간이 없어서 갈등이 생길 틈도 없다. 문제를 밀어두고 있던 시간만큼 품도 넓어져서 새로운 관점도 생겨난다. 문제해결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