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잉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Dec 11. 2024

2024.12.11 (수)

나는 매우 소심하고, 그래서인지 화가 많다. 아마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한 게 화로 쌓였을 것이다. 겉으로는 소심한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이겠지만 그건 사회인으로 살아오면서 익힌 위장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무섭다. 내가 화가 많고, 화를 낼 때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화를 내 곤경에 처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음이 모질지는 못해서 화를 내고는 돌아서서 곧 후회했다. 어떤 때는 화를 내면서 후회하기도 했다. 화낸 것을 사과하면서 늘 부끄러웠고, 그래서 다시는 이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결심은 그저 그때뿐이었다.     


남의 땅에서 십 년 넘게 부딪치고 깨지고 갈리면서 화 다스리는 법을 깨쳤다. 화를 다스리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이젠 화를 낼 일이 없으니 남은 시간 평온하게 지낼 줄 알았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다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과연 내가 내 화를 다스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 본사에 있는 후배들이 내가 현장에 내려가고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현장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몹시 날이 서있는 채로 며칠을 보냈다. 그 사이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다행히 잘 넘어갔고,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런 상황이었는지 의식하지도 못한다. 아침기도 하면서 깊은 감사를 드렸다. 화를 억제하는 게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화를 돋우지 말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워낙 챙기실 일이 많아 내가 사고 치는 거 보고도 말릴 겨를이 없으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