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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13. 2024

2024.04.12 (금)

책을 내고 나서 심심치 않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보아하니 질문지는 작가들이 작성하는 모양인데 정작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물어본 경우는 기억에 없다. 그래서 매번 질문을 결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얼마 전에는 출연료도 없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답변 준비에 드는 시간 말고도 당일에 적어도 반나절은 시간을 써야 하는데 무료로 출연하라는 것이다. 의아해하니 책 홍보가 되지 않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컨텐츠 사업을 한다는 사람들이 컨텐츠에 값을 치르지 않겠다는 것인데,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오늘 그곳에서 보낸 질문지를 받고 불쾌했던 기분이 풀렸다. 적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걸 강조하는지 알고서 만든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내 책은 읽은 것 같았고, 책에 들어있지 않지만 평소 강조하던 질문도 포함되었다. 기회 될 때마다 강조하는 내용이어서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다녀오면 되겠다.


나는 인터뷰 기사에 관심이 많다.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만든, 혹은 상황에 몰려있는 사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년 넘게 꾸려오는 블로그에 스크랩해놓은 인터뷰 기사만 해도 2,500건이 넘는다. 그런 내가 요즘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인터뷰 기사가 있다. 가장 가까운 이의 자살을 경험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애도’라는 인터뷰인데, 이미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삶도’와 ‘실패연대기’라는 제목의 인터뷰로 이름난 김지은 기자의 역작이다.


그는 지난 연말에 <태도의 언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인터뷰 뒷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오늘 그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그는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기자로서 써야 하는 기사는 자신의 글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자신을 감추는 글이어야 해서 갈증이 있었고, 그래서 인터뷰 기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 인터뷰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특별했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사람이 다 특별했다고 대답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을 인터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유명인만 인터뷰했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생전 인터뷰라고는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속내를 털어놓도록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 드는지 설명했거든. 그래도 그의 기억에 유난히 특별하게 남아있는 사람으로 김혜수와 손석희를 손꼽았다. 김혜수는 그의 글을 찾아 읽고 자신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서 그에게 먼저 인터뷰를 제안했고, 손석희는 다른 사람에게 그를 소개할 때 “나와 함께 마지막 방송을 함께 한 후배”라고 소개한 것처럼 타인에게서 늘 그만의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인터뷰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쓰는지 궁금했다. 질문이 밀려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지만, 다른 이의 질문에 대해 “급작스럽게 잡힌 인터뷰여서 준비하지 못한 채 임했다가 면박당한 경험이 큰 자극이 되었다”고 답변한 것만으로도 그가 인터뷰 준비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인터뷰의 수준은 질문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데, ‘실패연대기’나 ‘애도’ 같은 인터뷰는 치열하게 질문을 준비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답변이 아니더라도 그가 인터뷰를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하는지 짐작하는 건 내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어서 막막한 상황이 있었을 텐데, 그런 때는 인터뷰 전에 본인에게 전화해서라도 최소한의 정보는 확인하려고 했단다.


언젠가 이런 기회가 다시 생기면 그때는 인터뷰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가 쓴 인터뷰 기사야 믿고 정독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승이신 제심관 오병철 관장의 인터뷰였다. 남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인터뷰였을지 모르겠지만 행간에서 스무 살 가까이 아래인 내게 한 번도 하대하신 일이 없으셨던 스승의 음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에세이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읽었다. 조만간 북토크 자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리뷰를 미뤄두었는데, 이제 본인의 소회도 들었으니 정리를 시작할까 싶다. 생각해 보니 인터뷰 기자를 인터뷰한 기사는 본 기억이 없다. 그를 인터뷰하면 어떤 기사가 나올까?


북토크 끝나고 돌아서는데 기사를 쓴다는 건 취재한 것 중에서 필요한 걸 고르는 게 아니라 필요 없는 걸 빼는 일이라던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필요한 걸 고르자면 버릴 게 하나 없더라는 경험과 더불어.


사족) 오늘 북토크는 옛 서울시청 본관을 개조한 서울도서관에서 열렸다. 권위주의의 상징이던 건물을 도서관으로 개조한 것도 귀한 일이고 그런 곳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객석이 너무 가팔라서 강연자가 내내 올려다보며 이야기해야 했다. 그도 힘들었겠지만 보는 사람도 불편했다. 그저 1미터쯤 되는 단을 하나 자그맣게 만들어 강연 때 사용하고 끝나고 한쪽에 치워놓으면 되는 것을. 다음번에는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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