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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21. 2024

2024.04.21 (일)

며칠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 독창회가 열린다는 광고가 피드에 올라왔다. 일흔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로 아직 독창회를 연다는 것도 그렇고 삼십여 년 전에 그 극장에서 쫓겨난 사람이 어쩐 일인가 싶었다. 찾아보니 못된 행실을 견디다 못한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그를 해고한 것이 1994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해 이십여 년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그가 하루아침에 쫓겨난 것이다. 이후로 그는 오페라 무대에 서지 못했다. 비록 세계 최정상의 기량을 잃지 않았지만 어느 극장에서도 그를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극한의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으면 그랬을까. 그는 극장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독창회로 여전히 명성을 잃지 않았지만 끝내 오페라 무대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2016년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흑인영가로 독창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사람은 미웠어도 그의 절창을 잊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십이 년이라는 세월이 그 미움마저 잊게 만든 것이었을까? 그랬던 그가 5월 12일에 단 하룻저녁 가곡으로 관객을 만난다.


그런데 그의 독창회 광고에 눈길이 끌린 것은 올려놓은 흑인영가 한 곡 때문이었다. 들어보지 못한 곡인데 도무지 눈과 귀를 뗄 수 없었다. “My heavenly Father watches over me”라는,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켜보신다는, 특별할 것 없는 가사였지만 흑인영가 특유의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그가 자그마한 흑인 교회에서 부른 찬양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시기와 장소를 특정할 수 없었다. 그가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십은 안 되었을 때로 보인다. 그렇다면 극장에서 쫓겨날 때 전후가 아니었을까. 그 교회는 오만불손하고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그가 찾아가 찬양을 부를 교회가 아니었으니, 그것을 보면 극장에서 쫓겨난 이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상하고 찢어진 마음으로.


사흘째 그 노래를 듣고 있다. 2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곡인데 음원을 내려받아 반복 재생으로 걸어놓았다. 사흘을 들었으니 아마 수백 번도 넘을 것이다. 단순한 가사였는데 들을수록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어제는 몇 시간 끙끙대며 가사를 붙였다. 그리고 노래와 악보를 성가대 지휘자와 독창자에게 보냈다. 언제 한 번 봉헌 찬송으로 들려달라고.


은퇴하고 두 해가 훌쩍 넘었다. 퇴근하고 나서도 일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살던 사람이 일에서 놓여났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 줄은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다. 풍요롭다 못해 화양연화의 삶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다고 한다. 늘 내가 가진 걸 다 펼치지 못하고 산다고 안타깝게 여긴 사람이었으니 다행스럽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 노래를 온종일 되풀이해 들으면서 값없이 누리는 은혜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문득 내가 뭘 감사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기가 물 만난 것을 감사하는 것인가? 그 말은 나는 언제든 헤엄칠 수 있었는데 물을 만나지 못해서 헤엄치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다가 이제야 그걸 누리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냐. 아, 그건 아니지 않은가. 세상에 내가 당연하게 누릴 것이라는 게 어디 있을까? 도무지 가당치 않은 말이다. 


나는 더 바랄 게 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 아침에 교회 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 아내가 펄쩍 뛰며 마치 다 산 사람처럼 말하지 말란다. 말이 씨가 된다나. 그런데 씨가 좀 되면 또 어떠하랴. 지금 같아서는 오셔서 손 붙들고 함께 가자고 하시면 룰루랄라 하고 따라나설 것 같다만.


나는 캐슬린 배틀이 저 찬양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드렸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로 저 찬양을 그 기고만장하던 상황에서 불렀을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연주의 완성도가 높은들 어떻게 가사에 담긴 감사와 감격을 저토록 절절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이제 삶의 뒤안길에 들어선 그가 이번 독창회를 통해 그동안 다른 이들에게 입혔던 상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삶을 잘 마무리한 후에 모든 이들의 기억에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소프라노로 남아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토록 꿈꿨던 일흔이 되었다. 며칠 뒤 생일에는 아내와 오붓하게 식사하면서 지금까지 받은 복을 세어 보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0D9CnHXu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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