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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22. 2024

자본의 미스터리

에르난도 데소토

윤영호

세종서적

2003년 9월 10일 발간

2022년 6월 23일 개정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하고 부자는 가진 것이 많아 부자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것보다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는 폭이 훨씬 넓다. 가난한 사람은 사람이 돈을 벌지만 부자는 돈이 돈을 벌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난하다고 돈이 전혀 없는 건 아닐 텐데 왜 가난한 사람의 돈은 돈을 벌지 못하는가?


어느 방송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만한 논리를 소개했다. 가난한 사람의 돈이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죽은 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의 돈은 ‘살아있는 돈’인가?


방송에서 소개한 논리는 에르난도 데소토라는 페루의 경제학자가 자신의 저서 <자본의 미스터리>에서 주장한 것이다. 그는 페루에서 태어나 세계무역기구에서 경제학자로 활동했으며,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의 경제 자문역을 맡아 페루 정부의 경제 개혁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이 책에서 왜 자본주의는 서구에서만 성공했는지, 선진국 경제발전의 비밀이 무엇인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돈, 즉 자산은 주로 교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지만 서구에서는 똑같은 자산이 교환이라는 1차원적인 용도를 벗어나 ‘자본’으로서 또 다른 삶을 누린다고 설명한다. 자산을 담보로 하는 신용대출로 제2, 제3의 용도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산성이 훨씬 커질 수 있지만, 거기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대단히 복잡하다. 말하자면 ‘잠재력만 가진 자산’을 ‘생산성을 증폭시키는 자본’으로 만들 수 있는 대단히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이 돈이 돈을 버느냐 그렇지 못하냐 가른다는 말이다.


저자는 가난한 나라가 가진 자산 대부분이 ‘죽은 자산’이라고 평가한다. 한 마디로 ‘담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려면 집이 내 소유라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야 집이나 땅 같은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등기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 조직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하고 권한과 책임이 잘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저자는 그런 나라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예외적인 경우라는 말이다.


“카이로는 가치를 극대화할 수 없는 죽은 자본과 자산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곳에는 자본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제도, 다시 말해 노동과 자산을 바탕으로 제삼자에게서 이윤을 창출해낼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자산의 소유권을 추적하고 확인해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런 자산을 보호해줄 합법적인 규정도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잠재적인 경제적 특성들이 제대로 정리되거나 조직되지 않았으며, 이와 같은 자산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오해와 사기가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다양한 거래를 통해 잉여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어렵다. 말하자면 자산 대부분이 죽은 자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설명을 들으면서 그래도 어지간히 국가 형태를 갖춘 나라라면 죽은 자본이 부분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인용하는 내용은 이런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필리핀에서 소유권이 불확실한 부동산의 가치는 총 1,330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 수치는 필리핀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216개 기업이 보유한 총자산의 4배이고, 모든 시중은행들이 보유한 예금 총액의 7배이며, 국영기업들이 보유한 총자본의 9배이고, 직접적인 해외투자 총액의 14배에 해당한다. 제3세계와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지만 합법적인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은 부동산의 총가치는 최소 9조3천억 달러에 이른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수력발전소에 빗대어 설명한다.


“산 위에 호수가 있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그 호수를 보트를 타거나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호수에 담긴 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그 호수의 입지적인 요건 자체가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저 보트를 타고 낚시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던 호수(죽은 자본)를 에너지 생산 기지(살아 움직이는 자본)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당연히 물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확인하고 이를 전기로 전환해 잉여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력발전에 필요한 터빈과 발전기, 그리고 이를 수요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변압기와 전선이 필요하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세계적으로 죽은 자본이 그렇게 많다면, 그렇게 죽은 자본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면, 어째서 그 나라 정부는 이를 살려내서 잉여가치를 창출하도록 만들지 않는 것인가” 묻고 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수력발전에 필요한 터빈과 발전기, 그리고 이를 수요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변압기와 전선’인 것이다. 이를 경제 용어로 정의하자면 ‘자산이 지닌 경제적 잠재력을 합법적으로 고정해 생산에 활용하거나 확정된 시장에서 더 큰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해주는 재산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재산 메커니즘’에 익숙해 있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가 그런 체제를 수입해온 서구사회야 더 말해 무엇할까. 하지만 저자는 서구가 이런 통합적인 재산 체제를 갖추고 그에 의존한 것은 지난 2세기 동안에 급속도로 진전이 일어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서구 국가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통합적인 재산 체제의 역사는 고작 10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의 통합 체제는 겨우 50년 전에 생겨난 것이고.


여기까지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경제에 관한 특별한 이해가 없는 나 같은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돈이 돈을 번다”는 통설을 직관적으로 풀어낸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이 책은 2003년에 번역서로 발간된 것을 2022년 개정판으로 발간한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화제에 올랐던 책도 아닌데 발간한 지 20년이나 지나서 개정판을 낸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출판사에서는 소개 글에서 이 책이 블록체인 기술의 필연성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조망한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블록체인은 소유권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이고, 이 점에서 합법적인 재산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책의 내용과 긴밀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블록체인 기술의 발명은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불과 십 년도 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어렵기도 하고 딱히 관심도 없어서 비트코인 광풍이 불 때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이 책은 그보다 최소한 10년은 앞선 책이니 출판사의 설명대로라면 시대를 예측한 책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저자는 블록체인을 초기부터 지지한 유일한 경제학 거장으로, 가난한 나라에는 자선사업보다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권리 설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미래 경제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고, 다른 경제학자들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돋보인다고 주장한다.


늦게라도 비트코인의 가치를 알아볼까 하고 열심히 읽기는 했는데, 앞서 설명한 가난한 나라의 자산은 ‘죽은 자본’이라는 설명만 이해할 수 있었을 뿐 나머지는 읽기만 하고 이해하지는 못했다. 나만 재미있게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부분은 경제의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할 만하다. 하지만 전체 내용으로 보면 일부에 불과하니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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