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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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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27. 2024

2024.04.26 (금)

나는 바라는 게 두 가지 있었다. 번지점프 하는 것과 일흔이 되는 것. 뜬금없이 웬 번지점프인가 하겠지만, 번지점프를 하겠다는 건 아니고 내가 과연 번지점프 대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말이다. 일흔이 되고 싶다는 것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살이라도 덜 먹으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얼른 나이를 먹고 싶다니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이생의 삶이 끝난 후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죽음이 그다지 두렵지 않다. 오래전부터 “이제 때가 되었으니 돌아가자”고 손을 내미실 때 선뜻 따라나설 수 있기를 기도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고 특별히 미련 남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고, 정작 그날이 오면 어떨지 누가 알겠나.


나는 높은 곳을 몹시 두려워했는데, 오래전 과로로 쓰러지고 난 후 검도를 시작하면서부터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는 번지점프가 가능할 것도 같다. 내게는 죽음도 이와 같다. 지금 같아서는 마지막 날이 되어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다는 것일 뿐. 번지점프 대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지 궁금한 것처럼 그 날에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가까운 친구들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어느 친구는 아버지가 사십 대에 돌아가셨고 어느 친구는 아버지가 오십 대에 돌아가셨다. 이제는 모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이를 훌쩍 넘었다. 그 친구들은 아버지 돌아가신 나이가 된 그해 정말 조심하며 지냈다고 했다. 살얼음판 걷듯.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워낙 두려움이라는 게 본능적인 것이니. 나도 작년 한 해를 그렇게 보냈다. 어디 작년뿐일까.


아버지는 예순아홉에 돌아가셨다. 뇌졸중으로 몇 번이나 쓰러지셨고 거기에 당뇨까지 있어 꼬박 한 해 병상에서 고생하다 돌아가신 것이다. 쓰러지시기 전에는 약한 치매 기운도 있으셨다. 오십을 넘기면서부터 지병을 안고 사셨으니 내게는 큰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큰 병 없이 지내는 것도 그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흔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버지 돌아가신 나이를 얼른 건너가고 싶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자께서는 논어 위정편에서 ‘칠십은 마음 가는 대로 따라 살아도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 나이(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런지 몹시 궁금했다. 그러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이방 땅에서 수년 동안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으로 모난 성정이 상당히 갈려 나가 이젠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일흔이 되었다.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도 도리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싶어 다행스럽다. 처음 단추를 잘 끼웠으니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도록 애쓰리라.


오늘 쓴 복음서에서는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남은 날 제일 힘써야 하는 일은 ‘착한 행실’이겠다. ‘착한 행실’을 하는데 그것이 법도를 넘을 리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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