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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라오 Oct 24. 2023

무탈하시죠? 그럼 이제 행복하실게요~



무탈하다 : 병이나 사고가 없다.


"선생님, 무탈하시죠?"


MZ세대들이 들으면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헐~ 옛날사람~" 아니면 그 단어의 뜻조차 몰라 어리둥절할 어른들의 인사말이다. 예전의 나로서는 절대 쓸 것 같지 않던 인사말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왠지 쓸 것 같은 그런 인사말이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무탈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1~2년 전부터 치아가 좋지 않은 걸 느껴왔지만 턱관절도 좋지 않아 치과 치료의 어려움이 있어 치과치료를 계속 미뤄왔었다. 그러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을 것 같아 큰맘 먹고 치과 치료를 결정했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리 동네의 양심치과로 짐작되는 곳을 찾아갔다. 광고에 낚인 물고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진료 결과 어금니 2개를 크라운 치료하고 4개의 치아를 레진으로 때워야 한다는 결과를 통보받고 거금을 들여 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크라운 치료 전 신경치료 과정에서 내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치료 중간에 멈춘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일자목으로 인해 목의 어떤 각도에 따라 물을 뿌릴 때 숨이 잘 안 쉬어졌던 것 같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트라우마 비슷한 게 생겼는지 너무 긴장되어서 치료를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은 신경과에서 신경안정제 처방을 받아 치료를 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원래 치료하기로 했던 치료는 다 마쳤다. 아니, 마친 줄로만 알았다. 치료가 끝 나갈 즈음 다시 검사를 해보더니 치아 2개가 하나는 깨지고 하나는 충치가 생겨 추가로 크라운을 해야 한단다. 나에겐 청천벽력 버금가는 말이었다. "제기랄, 처음엔 안 깨져있던 치아가 치료과정 동안 깨졌다고? 치료하다가 깨트린 거 아냐? 이 힘든 치료를 또 계속해야 한단 말이야?". 사실 이미 레진 치료를 마친 치아 중 하나도 음식을 씹을 때 통증이 있어서 크라운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다른 치아들까지 이러니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무탈해지려 치과에 갔는데 무탈하지 않은 치료의 연속이 기다린다 생각하니 정신까지 무탈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치료를 보류하기로 했다. 치료과정에 있을 때가 치료를 받지 않을 때보다 덜 무탈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잘 씹고 잘 맛보는 행복도 잠시 보류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더 이상 손님으로 찾아가고 싶지 않은 치과를 당분간 가지 않게 되었지만, 얼마 있지 않아 나에게 두통과 안구통증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때 처음 느꼈던 그런 두통의 느낌과 비슷했다. 거기다가 안구 통증까지 있으니 혹시 녹내장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안과엔 갔냐고? 아니, 겁나서 아직 안과의 ㅇ자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그에 비해 운동은 하지 않아 혈압이 높아져서 그렇겠지?" 지레 짐작하면서 대신 산책을 하면서 좋아지길 기대? 아니 기원! 하고 있다.


비록 앞날이 창창한 인생을 살아오진 못했지만 건강만큼은 그런대로 무탈한 인생을 살아왔었다. 그래서 행복은 저 멀리 성공 너머에 있는 걸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런데 무탈하지 않은 몸을 가져보니 파랑새는 어디 저 멀리 있는 것도, 내 집 안에 있는 것도 아닌 내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저 육체 무탈하고 정신 무탈한 것이 행복이란 걸 미처 몰랐다. TV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던 행복 전도사가 어느 날 자살했다는 뉴스기사를 접하고도 충격을 받았을지언정 깨닫지 못했던 행복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행복 그까이꺼 별 거 아니다.


무탈한 이의 평범한 오늘은 무탈하지 않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행복한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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