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일(foil)과 세일(sail)
함께 배를 타다가, 혹은 세일링 영상을 보다가 가끔 감탄하듯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완벽한 메인세일 모양이야..."
영어로 번역하면 '퍼펙트 메인세일 트리밍' 정도였겠네요.
일단 용어 정의부터 해볼까요?
트리밍이란 세일의 모양을 잡아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메인세일은 메인이 되는 세일, 앞뒤로 삼각돛이 하나씩 달린 슬룹(sloop)에서는 뒤쪽 세일을 말하는 거고요,
퍼펙트라... 퍼펙트한 메인세일 트리밍이란 뭘까요? 주름 없이 팽팽한 메인세일을 말하는 걸까요?
사실 메인세일을 완벽하게 트리밍 하지 않아도 배는 갑니다. 크루즈 세일링을 할 땐 다들 배 위에서 수다를 떨거나 뭘 먹고 마시거나 하느라 배가 멈추지만 않는다면 세일에 덜 신경을 쓰게끔 되는데요, 그래도 바람은 어김없이 배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줍니다. 시간이 더 걸리든 중간에 바람이 잦아들어 엔진을 켜야 하든 어쨌든 목적지에는 도착하게 되고 세일 트림을 좀 더 잘했다고 우리의 바캉스 계획에 변동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바람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파도가 높으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요, 이때 평소 닦아둔 세일링 지식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특히나 메인세일 트리밍을 적절히 변경해 주면 배가 덜 기울게 하고 조타대의 저항을 줄일 수도 있고 돌풍이나 파도에도 안정적인 항로를 유지해, 속도를 잃지 않고 항해할 수 있게도 할 수 있거든요.
레가타에서의 메인세일 트리밍의 중요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죠. 세일링 요트의 동력은 바람이고 남들보다 메인세일 트리밍을 잘한다는 것은 더 좋은 메인 엔진을 탑재하고 레이스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세일 트리밍을 제대로 공부해보고자 자료를 찾다 보면 여지없이 마주치는 녀석이 있습니다.
시작부터 이런 걸 맞닥뜨린다면 왠지 힘이 빠지겠죠.
이미지 출처는 무려 미 항공 우주국 NASA입니다.
지금처럼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30년대, NACA airfoil이라는 이름으로 78개의 포일 형태를 개발해 엔지니어들에게 배포했습니다. 각각 고유 번호가 있고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즈음에서 왠지 내가 엉뚱한 곳까지 토끼굴을 팠구나 하는 자괴감과 함께 발길을 돌리기 쉬운데요, 메인세일을 이해하기 위한 포일의 지식은 사실 단순합니다. 아래의 영상을 보시죠:
비행기의 날개인데요, 촘촘히 붙어있는 리본은 마치 세일의 텔테일(tell-tale)을 떠올리게 하죠? 리본이 얌전히 누워있을 땐 그 위로 균일하게 공기가 흐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기는 공기 흐름의 막 같은 것을 만들어 불룩한 날개 표면을 따라 흐릅니다.
바람의 조건이 바뀌면 어느 순간 리본이 미친 듯 휘날립니다. 공기의 균일한 흐름이 깨졌다는 신호인데요, 이 공기막(?)이 걷힌 부분은 비행기를 위로 올리는 양력을 만들어낼 수 없고 날개 전체가 난류로 덮이면 실속(stall)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각종 비행기 사고들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실속 경고음의 그 실속입니다.
그럼 이 공기막이 사라지면 왜 비행기는 양력을 잃고 밑으로 떨어지나요?
비행기의 날개는 위쪽과 아래쪽 면의 굴곡이 다릅니다. 위쪽이 불룩하죠. 그러면 공기가 날개 앞쪽에 도착해 위아래로 갈라질 때 위쪽 공기의 흐름이 더 빨라지고 압력이 낮아지게 됩니다. 따라서 고기압(아래)에서 저기압(위) 쪽으로 힘이 발생하고 이것을 양력(Lift)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마찰력과 공기저항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를 항력(Drag)이라 하는데 공기가 날아와(?) 날개에 부딪치는 각도가 클수록 항력이 점점 커지죠. 그러다 공기막이 버티지 못하고 표면에서 떨어지는 순간 리본이 펄럭거리게 됩니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이 되는 거죠.
이를 위에서 내려다본 세일요트의 돛 모양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세일을 트리밍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일 아래 그림의 경우처럼 바람과 세일의 각도 차이가 너무 커져 실속이 발생하면 붐을 바람 쪽으로 열어 줘야 공기막이 세일을 따라 균일하게 흐를 수 있는 면적이 다시 늘어나겠죠. 그리고 메인세일의 파워는 다시 높아질 거예요.
포일의 대가리 부분이 둥글수록 허용 가능한 바람의 각도 범위가 넓습니다. 반대로 대가리가 날렵하면 바람은 더 정확한 각도에서 날아와 부딪히지 않으면 실속이 일어납니다.
뚱뚱한 포일은 저속에서 양력을 많이 만들어 냅니다. 반면 포일이 날씬하면 항력이 줄어서 고속에서 효율적이에요. 아래 비행기 날개 단면에서 경비행기(ULM)와 초음속 요격기(ultrasonic interceptor)의 두께 차이가 보이시나요?
사실 이 정도만 알면 메인세일 트리밍에 필요한 포일 지식은 충분해요!
이를 메인세일에 적용하자면,
1. 메인세일의 공기막 면적이 넓을수록 파워풀하고 반대로 난류가 발생하면 그만큼의 파워를 잃는다.
2. 메인세일이 뚱뚱하면 저속용.
3. 메인세일이 날렵하면 항력이 적어 속도가 빠르다.
특히 대가리가 둥글면 실속이 일어나지 않는 바람의 범위가 넓다. (너그럽다)
대가리가 날렵할수록 조타가 정확해야만 최고 효율을 유지하며 전진할 수 있다. (예민하다)
이제 메인 세일을 알아보기 위해 일단 부위 이름부터 알아보죠.
'얼추' 삼각형 모양인 메인세일에서 각 변을 이렇게 불러요:
러프(Luff)는 마스트에 고정된 변입니다.
메인세일을 올릴 때 쓰는 핼야드(Halyard)로 텐션을 조절해요. 핼야드를 조일수록 러프의 텐션이 높아집니다. 커닝엄(Cunningham)이 있는 배도 있어요. 커닝엄은 러프를 아래쪽에서 당겨주는 라인이에요. 마찬가지로 커닝엄을 조일수록 러프의 텐션이 높아집니다.
풋(Foot)은 붐(boom)에 고정된 아래쪽 변입니다.
풋을 붐의 뒤쪽 끝으로 당겨주는 아웃헐(Outhaul)로 텐션을 조절하죠. 아웃헐을 조일수록 풋의 텐션이 늘어납니다.
리치(Leech)는 마스트 꼭대기와 붐 말단 사이의 기운 변입니다.
메인시트(Mainsheet)를 당기면 붐의 말단이 아래로 당겨지며 리치의 텐션이 늘어나죠. 방(Vang)도 같은 역할을 해요.
위에서 '얼추' 삼각형 모양이라고 했지만 실은 삼각형이 아니에요. 세일 만드는 곳에서 바닥에 뉘어놓은 메인세일을 보면 러프 부분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에요.
좀 과장하면 아래 가운데 그림과 같은 모양입니다.
실제로 곡선인 변을 곧은 마스트에 고정하면 메인세일이 불룩해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그래서 뚱뚱한 메인세일을 좀더 날렵하게 하려면 마스트를 약간 휘게 해야하는데요, 러프가 곡선임을 모른다면 반대로 하기 쉽상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메인 세일의 모양을 잡는 여러가지 줄(?)의 작동법을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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