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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Jan 24. 2022

혼자 가는 제주 여행

갑자기 떠나는 여행의 설렘

여행을 결정하기까지 만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모처럼 주어진 3일의 휴가에 무엇을 할까 구상을 시작한 것은 금요일 퇴근 후였다. 운전을 못해 뚜벅이로 혼자 여행을 다닌 이후 몇 개의 코스가 있는데 첫 번째는 버스 여행이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하루 동안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십여 년 전 서해 바닷가로 다녀왔던 기억을 더듬어 버스 시간표를 검색하는데 거기서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아날로그적으로 시간을 검색하던 생각을 했으나 지금은 따로 앱을 설치해야 시외버스 시간을 검색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시간을 찾아보아도 하루 동안 다녀오려면 오고 가는데 시간을 거의 소비하고 정작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찾은 것은 기차여행. 강원도 바닷가로 다녀올 수 있는 기차 편은 많지 않았다. 강릉 바닷가로 가는 것은 버스나 기차나 시간이 비슷하게 걸렸는데 기차를 타려면 집에서 전철을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어차피 기차역으로 이동해서 타야 할 것이면 KTX로 부산을 다녀올까 싶었다. KTX 덕분에 이제는 하루에도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일출을 본다고 친구와 막차를 타고 밤새 달려 부산역에 새벽에 내렸었다. 새벽 첫차가 다니기 전이라 근처 찻집에서 날이 새길 기다렸다가 첫차를 타고 태종대에 올랐다. 하루를 보내고 다시 밤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이제는 그런 패기는 없고 혼자서 그럴 용기도 나지 않지만 첫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도 밤이면 여유롭게 집에 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KTX는 운임이 만만치 않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여러 번 갈아타는 것도 별 차이 없었다. 그러다가 생각은 비행기로 움직였다. 요즘은 저가항공도 많은데.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면? 3일을 쉬니까 빠르게 준비하면 2박 3일도 가능하지만 준비도 없이 혼자 가서 2박을 하는 것은 조금 꺼려졌다. 가장 큰 걸림돌은 운전을 못하니 대중교통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주도는 수도권처럼 시간에 딱딱 맞춰 대중교통이 자주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하룻밤만 자고 느긋하게 돌아보고 올까? 몇 년 전 푹 빠져서 봤던 드라마의 촬영 장소도 궁금하고. 이제는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는 더없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혼자 하룻밤을 묵을 곳이 있으려나? 일본 여행을 갔을 때는 도미토리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걸렸다. 찾아나 보려고 1박 숙박지와 항공권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여행 앱이나 항공권 비교 앱을 깔고 자주 들여다봤는데 코로나 이후 그 앱들은 내 폰에서 사라졌다. 내가 무관심한 사이에 앱 지도에도 변화가 컸나 보다. 내가 쓰던 앱은 찾기가 더 어렵고 검색해서 나오는 낯선 앱에서 항공권을 알아보았다. 내일 출발하는 비행기도 맘만 먹으면 바로 예약이 가능했다.


여기저기 몇 시간 정처 없이 앱 사이를 휘젓다가 운전을 못하는 뚜벅이를 위한 제주 여행 코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버스에 올라 몇 군데의 코스를 돈 뒤에 저녁에 하차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주로 이용하던 버스 여행을 제주도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런 여행이라면 블로거로 몇 년간 다져진 내공이 있어 따라다니는데 문제가 없다. 아침에 공항에서 픽업하고 저녁에 공항에서 내려준다. 그럼 당일 여행도 가능하겠네? 당장에 새벽 항공편과 돌아오는 시간을 검색했다. 찾다가 밤이 늦어 토요일 새벽 출발은 어렵지만 일요일 새벽 출발은 가능했다. 첫 비행기로 출발하여 버스 여행을 하고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코스. 코로나 이전에 밤 비행기를 타고 가고 오는 밤도깨비 여행이라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르지만 하루 동안의 제주 여행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다. 이어서 새벽 비행기를 타러 갈 교통편과 밤에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차편까지 검색했다. 그러다 보니 새벽 4시. 날이 밝으면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항공권 예약 버튼 클릭을 잠시 미루고 잠을 청했다.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자 이동 방법을 찾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인지 모르겠다. 이미 나는 오랜만에 여행을 떠날 설렘에 들떠 처음의 생각은 사라져 버린 줄도 몰랐다.


느지막이 일어나 다시 항공권 예약 사이트를 열었다. 시간을 좀 늦춘 것일 뿐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허락을 구했다. 사실 허락이라기보다는 다녀오겠다는 말을 먼저 하고 예약을 하고 싶었다. 허락하지 않을 남편도 아니었지만 가지 말란다고 포기할 나도 아니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새벽 출발하는 비행기와 밤에 돌아오는 비행기 예약을 마쳤다. 그리고 하루 제주 버스 여행도 예약했다. 새벽에 공항까지 갈 방법을 알아보았다. 코로나 전에는 가까운 곳에서 인천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코로나 이후 리무진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불확실한 버스를 기다리다 낭패를 보느니, 그리고 인천보다는 김포가 가까우니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 탈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요즘 택시 앱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콜 해도 잘 잡히지 않는다는 불편에 대한 후기도 많았다. 게다가 앱을 깔고 사용하기 위해 허용하라는 항목이 너무 많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개의 앱을 깔았다가 지웠다. 그리고 다시 예전에 쓰던 아날로그 방식, 지역에서 하는 택시 콜을 찾아보았다. 미리 예약은 안되지만 대신 새벽에도 바로바로 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걸로 결정. 여행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동안 벌써 토요일 오후가 거의 다 갔다. 이제 짐을 싸야지. 계획하고 가는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즉흥적인 여행을 떠날 때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레는 마음은 이미 어젯밤부터 시작되었다.


숙박을 하지 않으니 캐리어는 필요 없었다. 불필요한 짐 없이 홀가분하게 작은 가방 하나 매고 가볍게 다녀와야지. 삼각대를 챙길까? 기내에 들고 탈 수는 있으려나? 기내에 반입할 수 없는 것들은 뭐였지? 너무 오랜만의 여행이고 비행기 탑승이라 처음 가는 사람처럼 낯설고 복잡했다. 공항에 가면 뭐부터 해야 하지? 체크인은 모바일로 하고 갔던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역시 가방은 가벼워야 한다. 삼각대를 포기하고 작은 이동용 거치대 하나와 보조 배터리를 챙겼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니까 책도 한 권. 읽을 시간이 되든 안 되든 여행을 떠날 때 책 한 권을 챙기는 것은 습관처럼 굳어졌다. 외출을 할 때도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곤 가방에 항상 책은 한 권 들어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이제 읽어야 하는 책이 좀 두꺼워서 얇은 책으로 넣을까 약간 고민한 것을 제외하면 당연한 준비물이었다. 그렇게 기본만 넣었는데 벌써 가방이 묵직하다. 남편은 보조배터리를 두 개 넣으라는데 그것도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폰으로 영상을 많이 찍어도 하나면 충분할 것이다. 부족하면 거기에 맞춰서 사용하면 된다.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췄다. 잠이 부족하면 여행이 힘들어질 테니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잠은 금방 오지 않았다. 선잠이 들었다가 깨길 몇 번, 어느새 새벽 4시가 되고 알람이 울렸다. 나는 서둘러 준비하고 택시 콜을 했다. 차 번호와 기사님 폰 번호, 2분 이상 소요라고 문자가 왔다. 코트를 입고 나가보니 택시는 벌써 와 있었다. 번호를 확인하고 차에 오르자 행선지를 묻지도 않고 출발했다. 기사님의 폰에는 목적지로 김포공항 국내선이 떠 있었다. 세상이 조용한 시간, 낯선 곳으로 가는 길이고 낯선 사람을 믿고 가야 하는 것이라 얼마 전 새로 맞춘 안경을 꺼내 썼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누구든 완전히 믿을 수 없기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몇 년 만에 떠나는 혼자 만의 여행은,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채 캄캄한 새벽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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