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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Nov 22. 2021

그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

덕질의 세계

거울 속 내 미소가 예뻐 보였다. 앗! 무슨 일이지? 이제껏 보았던 중에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랑할 때의 표정이다. 우리는 사랑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크게 의식하지 못한다. 가족의 사랑이든 연인의 사랑이든 동료의 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인류에 대한 사랑이든,  크든 작든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그중에는 매일 체감함으로써 행복하게 해주는 사랑도 있고 은은하고 든든하게 마음을 받쳐주는 사랑도 있다. 가족의 사랑은 공기와 같아서 늘 곁에 있지만 고마움이나 강렬함 같은 것을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강력하게 작용하는 사랑은 삶을 활기차게 하고 생을 이끌어 갈 기운을 북돋아준다.


어느 드라마에서 새로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 자신에게 고백해오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는 자신을 변화시킨다고,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의 고백을 거절한다. 자신을 타인의 영향으로 인해 변화시키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싶었지만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의존하여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꽤 로맨틱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사랑에 빠졌다. 당연하게 여겨 온 가족 간의 사랑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남녀 간의 사랑도 동료나 친구와의 사랑도 아니다.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나는 요즘 나를 좀 더 열심히 살게 하고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어떤 배우를 좋아해 소위 덕질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무릇 스타라고 함은 너무나 멀리서 빛나기에 가까이 갈 수는 없고 그저 바라보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덕질을 하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키우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게 된다.


청소년 시절에 친구들이 연예인 책받침을 모으고 스타의 브로마이드를 구해 방에 붙여놓을 때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이 전혀 수긍되지 않았다. 어떤 가수의 노래가 좋으면 그냥 노래를 들으면 될 일이지 왜 그렇게 따라다니며(당시에는 사생팬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이었고 극성팬들의 행태를 범죄로 여기지 않았었다)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된 후 집 안에서 육아만 하다 보니 바깥과 단절되어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가 필요했다. 문화생활도 전혀 하지 못하는 나에게 TV 드라마에 대한 애정은 꽤 그럴듯한 취미생활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그것이 유일한 통로가 되지는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지나온 시절과 잘 맞아떨어지는 드라마에 나왔던 어떤 배우를 보고 나는 홀릭했다. 그냥 배우일 뿐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면 볼수록 드러나는 따뜻한 인간의 향기에 더욱 취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덕질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고맙게도 배우는 드라마의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따뜻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었고 열일 행보를 해서 팬들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한동안 정신 못 차리고 덕질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5년쯤 흐르자 배우의 활동도 뜸해지고 내 관심도 자연스레 옅어져서 내가 그 배우의 덕후라는 것은 내 오랜 지인들만 아는 사실로 남게 되었다.


올해 여름 나는 다시 덕통 사고라는 것을 당했다. 배우지만 노래할 때는 더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처음엔 내가 코로나로 노래방엘 오랫동안 못 가서 생긴 후유증이라 생각했다. 그냥 노래가 좋아서 그런 거야, 입덕을 부정하며 하루 종일 노래를 들었다. 좋아하는 목소리,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수록 나는 점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고 풍덩 빠질 만큼 나는 세상과의 소통에 절박하지 않았고 다양한 나의 철학과 생각에 가지를 뻗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그에게 빠져버린 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기분 좋게 나는 그런 마음을 즐기고 있다. 무언가에 미쳐서 덕질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고 생을 바라보는 여유와 더불어 삶의 기쁨 같은 것도 함께 생겨난다는 것을 이전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쉬는 날이지만 그의 뮤지컬 공연을 보러 나섰다. 외출 준비를 하며 들여다본 거울 속의 나는 처음 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좀처럼 집 밖으로 움직이지 않는 일요일이고,  전철로 2시간 가까이 이동해야 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공연을 보러, 이미 4일 전에 봤지만, 그리고 또 일주일 후면 볼 것이지만 오늘 또 보러 간다는 것에 마냥 설레고 행복했다. 나도 모르게 올라가입꼬리를 감출 수 없었다.


사랑에 빠졌네, 내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가 없으니 사랑에 빠진다는 건 좋은 일일 거야. 그런데 나는 누구와 사랑에 빠진 걸까? 그와 사랑에 빠진 걸까? 그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는 단지 멀리에 있는 별을 바라보는 것인데? 나는 사랑에 빠진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배우를 사랑하고 점점 더 알고 싶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저 공인으로서의 모습일 뿐이니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응원함으로써 나에게 생기는 에너지와 활기를 더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면 나는 불만이 많았고 못난 것 같은 부분만 보였다. 나는 왜 눈이 작을까, 코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광대뼈는 왜 이렇게 튀어나왔고 볼은 또 왜 이렇게 홀쭉할까. 단 한번도 내가 웃는 모습을 맘에 들어한 적이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나는 흠잡을 데가 더 많아졌다. 땀구멍은 커졌고 이마와 눈가와 목에 주름은 선명하다. 세월을 속일 수 없는 기미와 주근깨는 길이 들고 있다. 하지만 볼수록 예전보다 예뻐졌다. 내 미소가 맘에 들었다. 이런 표정을 온화하다고 해도 되려나.


주름 생길까 봐 활짝 웃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웃을 일도 없었고 웃는 내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나는 많이 웃는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따라 웃게 된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으면 나도 크게 웃고 싶어진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를 바라본 뒤로 사는 게 왠지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이런 변화들은 내가 그를 사랑해서라기 보다 그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기에 생겨난 마음이리라. 나를 사랑하는 것, 아마 평생의 숙제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그와 함께, 그 덕분에 차근차근 이루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덕질하는 마음은 나를 가꾸어 가는 따뜻한 마음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나는 사랑에 빠진 내 얼굴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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