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적금이 만기 되었다. 온라인으로 만기 해지를 해 보려고 했는데 어디에도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현장에서 가입한 상품은 현장에서 해지해야 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벌써 3년 전, 같은 질문을 했고 잠시 고민했다. 온라인으로 해지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적금을 부을까. 3년에 한 번이니까 그냥 하자. 다시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때는 일하는 시간이 자유로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쉬는 날을 기다려 은행에 방문해서야 해지할 수 있었다. 또 가입할까 싶었지만 이번엔 가입과 해지가 편리한 온라인을 택하기로 했다.
농협에 거래를 시작한 것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지역농협에 통장을 개설하려면 만 원의 회비를 내고 준조합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왜 그래야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큰 의심 없이 그렇게 했다. 지금도 그게 내가 농협과 거래를 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제1 금융권의 여느 은행에 비하면 세금이 저렴한 편이라서 꾸준히 적금으로 이용하고 있다. 1년과 3년 적금을 부었었는데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가면서 3년으로 고정시켰다. 3년 만기가 되면 다시 3년. 큰 의미는 없고 큰돈도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나 목돈이 필요해질 때 사용하려고 아이들 이름으로 월 10만 원씩 부었다. 아이들 자라는 속도와 같이 3년은 자주 돌아온다.
쉬는 날 아침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늑장 부리다 보니 요즘 은행업무가 단축되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부랴부랴 달려갔다. 내가 들어가자 바로 은행 셔터를 내린다. 영업장 안에는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9시 반부터 3시 반까지 영업시간을 단축한다고 쓰여 있다.
내가 뽑은 번호까지 아직 열명도 넘게 남아있다. 창구는 적고 사람은 많아 은행 대기 시간이 무척 길어졌다. 게다가 대부분의 고객은 연세가 많은 분들이다. 한 명의 업무 처리 시간은 꽤 길었다.
- 고객님, 이렇게 보내시면 수수료가 나와요.
- 아니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 고객님, 잠깐 제 설명을 들어보세요.
(할아버지 고객은 막무가내로 자신의 말만 계속)
- 할아버지, 계속 그 말씀만 하시면 어떡해요. 그러면 돈 못 보내요.
- 그럼 어떡해. 몰라 알아서 해봐.
-고객님, 여기 화면에서 답을 누르셔야 해요.
- 이거?
- 아뇨. 고객님. 이체 요청을 받으셨습니까에 예라고 하시면 이체할 수 없어요. 아니오를 누르셔야 해요.
- 고객님, 수수료는 8천 원이에요.
- 6천 원?
- 8천 원이요.
- 7천 원?
- 8천 원이라고요.
살짝 짜증이 담긴 직원의 말투와 목소리였다. 연세 많은 분들을 상대로 하루 종일 이와 비슷한 말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럴 법도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업무 마감 시간이 지나버렸으니. 반면 가족처럼 살갑게 답을 해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개인의 차라고 하기엔 농협의 업무는 예전의 가치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직원들은 단지 말을 하는 기계와 다를 바 없지 않나. 젊은이들은 이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은행을 찾지 않아도 된다. 거기서 또 다른 소외가 일어나고 있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에서 그런 말이 떠올랐다.
한동안의 실랑이를 듣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직원은 나에게 바쁘셨냐고 묻는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그렇다고 답했다. 만기가 한참 지나서 온 나에게 바빴냐 물은 말일 터였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근황을 묻는 것 같은 물음은 다소 어색하다. 우리는 소통이라는 것의 방법을, 방향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
다시 3년 적금으로 가입하겠냐고 물어서 이번엔 온라인으로 하겠다고 했다. 3년보다 긴 적금은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굳이 3년으로 하는 이유가 있는지. 기간이 길어지면 이율이 올라간다면서. 생각해보니 특별한 이유는 없다. 1년은 너무 짧고 5년은 너무 길어서. 혹은 아이들 학교 졸업할 때 쓰려고. 그런 생각들이 지나갔다.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어 업무가 끝났다. 아까 들었던 냉랭하고 소모적인 대화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대화가 아니다. 그저 사무적인 말의 주고받음일 뿐. 이런 것마저 곧 사라질 것이다. 어느 지역에는 동네 은행이 자동화기기만 남기고 아예 없어진다고 했다. 그때 나도 언젠가 대열에 들어서게 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노인들이 새로운 문물을 다루는 방법을 몰라 전전긍긍하며 젊은이들의 뒤만 바라보는 시대가 곧 닥쳐올 것 같아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