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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Mar 29. 2021

여전히 당신에게서 마음 쓰는 법을 배웁니다



당신에게서 여전히

마음 쓰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한 때 영화에 심취해 배낭 하나만 둘러 맨 체 오스트리아에 머물던 적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 마냥 기차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봤다. 자그마한 공책에 풍경 위로 떠오르는 마음을 잡 글로 쓰고 고치면서 마음의 크기를 가늠한다.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변환하는 건 늘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눈부신 풍경 앞에서도 머리를 쓸어 넘기를 반복하였다. 그것조차 주인공의 한 모습이라 생각했었다. 우연히 옆 칸의 문을 열고 커플의 티격태격하는 소리에 정적은 깨어지고 건너편 혼자 앉아 있던 당신과 그들을 핑계 삼아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길 바라였고 오스트리아에서의 남은 여행이 그렇게 채워지길 바랬다.


혼자 하는 여행은 비워지는 곳이 많다. 기나긴 여행의 첫 도시인 프라하의 첫날밤은 눈부신 야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 어느새 커플에 둘러싸인 혼자를 발견하는 시간이 있었고 비 오는 날 비를 맞아가며 부다페스트의 한 언덕을 올랐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밤새 호스텔 구석에서 덜덜 떨며 밤이 지나길 바라기도 하였다. 처음 접하는 풍경에 엮인 호기심에 누군가의 문을 덜컥 열고 들어간다. 섣불렀던 탓인지 밤새 열병 앓다 물러나길 몇 번. 이어지는 여행들을 통해 조금씩 내가 가진 마음의 모양을 알기 시작했다. 모양을 안다는 것은 거기에 맞는 사용법도 자연스레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마음을 사용하는 게 사실 별 일은 아니었다. 둥근 풍경에는 둥근 마음을 네모난 곳엔 네모나게 다듬어 마음을 맞추는 일 같았다. 둥근 것과 네모난 것이 만난다 해서 애초에 그걸 틀린 것이라 말하진 않는다. 다만 그 중간 어디쯤의 모양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사람을 여행한다’와 같은 표현을 한다. 그러면 ‘사랑하다’ 라는 동사로 대체 할 수 있었다그곳의 풍경과 시간을 여행하고 얽히는 무형의 마음을 유형의 활자로 기록한다. 기록은 표현이 되고 표현은 곧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한 때 스스로의 마음을 몰라 어찌할 줄 몰랐다. 느껴지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간극의 크기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때 발생하는 후유증은 마음 표면 위로 크나큰 상흔을 남긴다. 상처가 흔적도 없이 지워질지 혹은 평생 마음 어느 구석에 남아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마음을 쓰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그 위로 새로운 것을 돋아나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첫 배낭 여행으로 떠났던 오스트리아에서 꽤나 기나긴 시간을 머물렀는데 관광지라 불리는 것들 많이 둘러보지 않았다숙소나 가까운 카페에서 글을 적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볕이 좋은 날은 동네를 산책하는 정도에 그쳤다. 아쉬운 마음에 여행이 끝나가기 전 보았던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로 하였다. 


비엔나 오페라를 시작으로 LP 가게, 카페, 광장, 놀이공원 그리고 주인공이 거닐던 골목까지. 영화 속의 특별했다 생각한 풍경들 속에 머무르다 금방 발길을 돌렸다. 더 이상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영화가 좋아서 머무르던 도시였는데 그 이유들을 잃은 느낌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풍경들은 두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로 채워졌을 때 특별한 곳 들이었으니. 도시의 풍경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풍경 위로 엮였던 감정들을 원했던 것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던 거였다. 사실 그때는 마음의 상실을 잘 알지 못하였다. 이후 누군가가 오스트리아 여행을 물을 때 제대로 답해준 게 없었다. 여행을 잘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또 다른 봄에 떠났던 여행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다. 그러면서 오스트리아에서의 여행을 자연스레 되짚어 보았다. 잊고 지내던 단어들을 다시 찾아봤다. 여행 상자 위로 덮인 먼지를 털어내고 기차에서 열심히 적었던 글과 비엔나에서 머무는 동안 적은 짧은 소설과 문장들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아. 여행을 잘 못했던 게 아니라

마음을 사용한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였구나, 라고 말이다.


아득했던 봄날의 여행 이후 당신을 통해 여전히 마음 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새로이 배워지는 감정을 당신으로부터 배운 감정과 나란히 두고 비교해본다. 마음의 중량을 달아 크기를 짐작해 본 후 유형의 것으로 기록하고 표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랑하기 위해서. 

그렇게 오늘도 당신을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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