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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탕진남 Sep 07. 2023

마드리에서의 새로운 여행

어제는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 시체스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긴 운전을 했다. 운전 시간만 6시간 걸리는 아주 긴 코스다. 실제로는 오전 9시에 출발해서 오후 9시에 도착했다. 중간 경유지 사라고나에서 밥 먹고 머리 자르고 관광도 하느라, 12시간 정도 걸렸기 때문이다. 


사라고사에 도착하니 바르셀로나는 뉴욕, 이곳은 보스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뉴욕은 사람 많고 정신 없는 곳이라면 보스턴은 사람이 적고 쾌적한 곳인데, 사라고사가 그랬다. 도시의 분위기 자체가 깨끗하고 조용하고 여유 있었다. 딱 내 스타일이다. 


스페인 음식을 먹고 싶어 찐 현지인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영어 메뉴판이 없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짧은 영어와 바디 랭귀지로 2가지 요리를 시켰다. 간단하게 와인도 적실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갑자기 웨이터가 잠시만 기다리고 하더라. 그러더니 한 병을 통째로 주더니, "너한테만 주는 서비스야."와 같은 눈빛으로 윙크를 하더라. 


일단 줬으니까 주문한 해산물 볶음밥과 소고기 스테이크와 함께 페어링해서 먹었다. 한국에서의 절반 가격으로 이런 고급 요리를 즐길 수 있음에 행복하고, 잔잔한 와인 또한 좋았다. 결제할 때보니 그 와인을 무려 서비스로 준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중에 또 보자고 행복한 인사를 나누고, 가게를 나왔다. 


원래는 마드리드에서 머리를 자르려고 했는데, 이곳이 너무 좋았다. 관광객이라고는 코딱지 만큼도 없어서 오히려 무서웠던 이곳을 더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 주민처럼 구글맵에 뜨지도 않는 바버샵에 갔다. 한국으로 따지면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동네 미용실 분위기였는데, 중동 혼혈 같은 스페인 형님 둘이서 운영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영어를 못했고, 나는 번역기에 "스페인 스타일로 잘라줘."라고 적었다. 그러자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고, 나는 좋다고 했다. 사진은 나중에 첨부할 예정이지만, 한국에서는 하기 힘든 과감한 스타일로 머리를 깔끔하게 밀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머리와 수염만큼은 스페인 현지인이 된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후에는 필라피 대성당으로 갔다.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이곳에 있는 유일한 관광지다. 12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대성당인데,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살면서 다시 올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산책 삼아 다녀왔다. 그곳에서 신디라는 중국인을 만나 종교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나누고, 종교의 신성함도 느껴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커피라도 한 잔하고 싶었지만, 나의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는 호스트를 생각하며 마드리도로 다시 향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했다. 혼자서 6시간 정도의 긴 운전을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도 했지만, 산팅아고 순례길처럼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사용했다. 고민스러웠던 부분이나 생각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서 사색도 하고, 듣고 싶었던 강의도 소리로 들으면서 삶의 지혜를 채워갔다. 혼자서도 텅빈 도로를 노을을 맞으며 달리고 있으니, 한국에서 출발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기도 하더라. 그런 인생과 내 자신이 신기하면서도, 대견스러웠다. (영상 첨부 예정)


9시에 도착했다. 나는 호텔보다는 호스텔을 좋아하고, 호스텔보다는 에어비앤비를 더 좋아한다. 호텔은 편하기는 하지만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너무 심심하다. 어차피 잠만 자는 곳인데 그렇게 좋은 곳도 필요가 없고, 사람들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대로 호스텔은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여행자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호텔보다는 호스텔을 좋아한다. 


하지만 호스텔 생활을 2주 정도 하다보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냥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들어도 이어폰 없이 듣고, 샤워를 해도 편하게 하고 싶을 때가 온다. 이것이 호스텔의 단점이다. 사람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을만큼 개방적인 공간이지만, 그만큼 독립적인 공간이 없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좋아한다. 


에어비앤비에는 현지인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살 수 있는 집도 많다. 이렇게 되면 진짜 현지인과 함께 살면서, 현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때마침 화가분의 개성 넘치는 집을 발견해서, 이곳에서 3박을 하기로 했다. 


9시에 도착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집에 들어와 짐을 풀 때까지 나의 선택은 최고였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상 첨부) 호텔보다 좋은 집이었다. 게다가 우리 둘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코드도 잘 맞았고, 집주인도 상당히 friendly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같이 저녁 먹자고 했고, 현지인들만 아는 식당에서 현지식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냥 이런 공간에서 현지인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이후에는 둘 다 바쁜 하루를 보냈기에, 오자마자 각자 방으로 돌아가 뻗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7시더라. 어제 저녁에 도착했기 때문에, 마드리드가 어떤 도시인지 감히 잡히지 않더라. 차 타고 돌아다니면서 도시를 알아보고 싶어서 15분 거리의 전망대 공원을 찍고 출발했다. 수도 답게 차가 아주 많았다. 물론 한국 강남만큼은 아니지만 ㅎ 돌아다니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등굣길과 출근길을 경험할 수 있었다. 때마침 어제가 스페인 학생들이 개학하는 날이어서 그들의 삶을 제대로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전망대에 도착하고 나니, 마드리드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재밌는 건 수도라고 해서 화려하고 높은 건물이 거의 없다는 거다. 어쩌면 화려하지 않지만 잔잔하게 살아가는 게 마드리드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저 멀리 보이는 고층빌딩 몇 개가 보이길래 그곳도 알아보고 싶었다. 


-2편에 이어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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