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언제나 손에 꼽히는 여자들의 최애 레퍼토리였다. 우리는 40에서 70까지 폭넓게 펼쳐진 체중계 위에 서서 모두 다이어트를 외쳤다. 친한 중학교 동창 무리에도 20년 간 다이어트가 함께 했다. 164cm에 59kg인 K가 요즘 살이 많이 쪘다고 푸념을 하면 162cm에 70kg인 Y가 "말라깽이는 그 입을 다물라"라고 했다. 다 같이 만났다 헤어지는 길에 서로를 찍은 사진을 보내면 Y는 사진 속 K와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내 옆에 있으니까 K 진짜 작아 보이네ㅠ' 라며 대꾸할 수 없는 한탄을 했다. 대화 주제가 돌고 돌아 다이어트 섬 주위를 맴돌 때면 대개 나의 임무는 앞에 놓인 음식물로 입을 바삐 놀림으로써 어떠한 코멘트도 달지 않는 것이었다. 살쪘다고 푸념하는 K에게도, 자길 보라며 자학적 대꾸를 하는 Y에게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살 같은 거 뭐 중요해. 몸은 그대로 소중한 거야.’ 같은 말은 내 입 안에서조차 꺼끌꺼끌 맴돌았다. 게다가 ‘찐친’ 사이에서 그런 공익 메시지는 금기 중 금기였다.
여자들이 끊임없이 작아지는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춰가는 것도, 얼굴 위에 칼을 대고 뭔가를 넣고 잡아당기기를 반복하는 것도, 명품을 잔뜩 걸침으로써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에도 모두 신물이 났다. 다 그들의 자존감이 낮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들의 시선에 너무 쉽게 굴복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미디어 탓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존 버거가 말한 것처럼 고전 회화에서부터 여자들은 관객이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채로 발가벗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자기혐오와 파괴의 굴레 밖으로 벗어날 힘은 결국 여자 자신에게 있다고 여겼다. 나는 빼고 깎고 채워넣길 반복하는 그들을 이해하는 한편 한심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우습게도 나 역시 다이어트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내 몸은 인지되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날씬해 본 적이 없었다(정상 체중을 벗어난 적도 없지만 이건 날씬한 게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하비(하체비만)’였다. 엉덩이부터 허벅지, 종아리에서 발목까지 그야말로 ‘코끼리 다리’ 같았다. 이십 대 초반까지 내 하의는 언제나 발목까지 꽁꽁 감싸는 검정 바지였다. 한 여름에도 마찬가지. 그런 주제에 우습게도 남의 다이어트를 비난했던 건 내가 그들처럼 극단적인 식이요법을 행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굴에 칼이나 주사를 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명품을 살 바엔 그 돈으로 술 사 먹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다. 맛있는 것을 포기하느니 엉덩이와 허벅지를 꽁꽁 숨기는 편이 내게는 훨씬 쉬운 일이었다.
긴바지를 벗어던진 건 스물두 살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였다. 그 여행에서 나는 유럽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 됨으로써 비로소 여성성을 인증받았다(고 여겼다). 나도 남자에게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한국에선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하고 술에 취한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려던 남자 선배들이 그득했는데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한국 남자들은 나더러 너무 크고 뚱뚱하고 드세다고 했다. 반면 유럽 남자들은 대낮에, 취하지 않고도 아주 상냥하고 다정했다. 내 미소를 칭찬했고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유럽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은 날, 숙소 옆 방의 한국 남자는 “그거 다 너랑 자보려는 속셈이잖아.”라며 혀를 찼다. 의아했다. 여자랑 자려면 이렇게 유혹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유혹조차 맨 정신에 못해서 술의 힘을 빌리는 놈들이 뭐 이렇게 날카로운 척하고 있지. 기분을 잡칠 것 같길래 그냥 한 마디만 했다. “그럼 나야 좋지!”
한 달간의 여행 이후 욕망의 대상 혹은 주체로서 자신감이 치솟은 나는 그 뒤로 짧은 반바지나 치마 입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걸로 남자들에게 요청하지도 않은 몸매 진단평가서를 받아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게 내 자존감이라고 여겼다. 다리 좀 두껍고 엉덩이가 커도 다이어트하지 않는 것.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원하는 대로 입고 다니는 것. 나를 원하는 남자들과 자주지 않는 것.
이 모든 게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건 재미있게도 거울 속 내 몸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본 뒤였다. 심지어 이미 '탈코(탈코르셋)' 했다고 생각한 바로 최근 말이다. 우연히 온라인 성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알게 하기 위한’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네모난 가상공간에 모여 우리는 각자 스크래치 페이퍼의 자신의 몸을 그렸다. 거울을 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곳, 내가 싫어하는 부위, 각자의 상처, 어릴 적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 부위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나누었다. 나는 그림 그리기 앞서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섰다. 내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하는지 따라가 보았다. 종아리, 허벅지, 몸을 돌려 엉덩이까지... 한평생 콤플렉스로 여기고 있던 곳들이었다. 혹시 살이 더 붙진 않았는지, 튼살과 셀룰라이트는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지, 아주 짧은 시간 자동 응답기처럼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제야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내 몸을 감시하고 검열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한심하게 여기던 여자들보다도 훨씬 뒤늦게 말이다. 기준만 달랐을 뿐 내 몸에도 분명히 기입된 문화의 흔적이 있었다. 내 안에는 어김없이 남성 감시자가 있었다. 그가 속삭였다. '딱 거기까진 섹시로 봐줄 수 있어. 그 이상은 안 돼. 그건 여자가 아니야.'
내가 욕망할 법한 남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니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일말의 희망조차 놓은 뒤에는 오히려 후련했다. 욕망 free 한 자리엔 종종 외로움에 사무치는 몸이 남긴 했지만 괜찮았다. 값싼 기회비용이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젊은 남자가 있는 자리에 가면 관자놀이가 땡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외모나 매력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전혀 끌리지 않는 남자들 앞에서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욕망의 대상으로서 몸짓했다. 넘길 머리도 없는데 자꾸 손이 귀를 쓸었다. 실없이 웃었다. 외로워서 그러니?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어 물어봤자 돌아오는 답은 우물쭈물했다. 월경도 시작하지 않았던 때부터 너무 오랜 시간 욕망의 대상이 되어서일까? 인지하지 못한 채로 그 역할을 너무 충실히 수행해와서일까.
학교 캠퍼스의 그늘진 등나무 벤치에서부터 매일 타고 내리는 지하철에까지 쉼 없이 쫓아오는 남자들의 시선을 느낀다. 60kg가 넘는 게 여자냐고 하던 놈과 자기가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하던 놈을 떠올린다. 그놈은 한 놈이다. 아니 여러 놈이다. 아니 모든 놈이다. 여자친구가 있는 놈도, 아내가 있는 놈도. 그놈이, 내 안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새삼스럽게 다짐해본다. 욕망 때문인 다이어트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팟타이와 맥주 한 캔에게 맡겨본다. 내일 뱃살이 나와도 나는 내 몸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