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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Jun 08. 2022

두렵지만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하여

작년 퇴사한 직장에서 나의 마지막 직무는 서비스 기획자였다. 그전까지 7년을 연구하고 컨설팅하던 내가 어쩌다 기획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두고, 기획과 동시에 PM까지 하느라(맞다. 도통 양심이라곤 없는 회사다.) 밑으로 수두룩 ‘계약직’ 주니어들이 늘어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렇다고 이 글이 전 직장의 고발서나 ‘졸지에 리더’의 고충서는 아니다. 계약직으로 희생당한 20대 청춘들의 비애는 쓸 깜도 안 된다. 이 글은 그냥 아주 찌질한 고백이자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상념을 뱉어놓은 글이다.

주니어들은 총 4명이었다. 스물셋 하나, 스물다섯 둘, 스물여섯 하나. 이제 막 졸업장 잉크가 말랐거나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나와는 최소 7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애기’들(실제로 나는 이들과 대화할 때 저 단어를 애용하곤 했다. 포 이그젬플. “그건 네가 애기라 그렇지” 맞다. 나는 상당히 어마어마한 꼰대다).


나는 그들을 좋아했다. 나를 부르고 졸졸 쫓아오는 모양새는 어미를 따르는 새끼 오리 같았다. 귀여웠다(귀여운 것에 많이 약하다). 하는 것마다 서툰 모양도.


잘해보려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과 어김없이 실패한 뒤 대놓고 속상해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요즘 20대들답게 직장에 절대 착취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계약직이지만 미약한 권리나마 지켜보겠다는 다짐은 애처롭기도 했다. 때로 해야 할 일을 끝내지 않고도 6시면 엉덩이를 털고 달려가는 모습은 낯설기도 했지만, 복도에서 마주치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부풀리는 모습조차 작은 새 같아 앙증맞았다.


그즈음 동년배 친구들 사이에서 비슷한 고민들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다. “요즘 애들 진짜 이상해.” 소주잔을 앞에 둔 친구가 망설이다 한숨을 쉬듯 말하면 나머지가 “와 꼰대다, 꼰대.”하며 놀렸다. 그러나 하나 둘 에피소드가 늘어날 때마다 ‘진짜 요즘 20대들이 이런 건가?’ 하는 고정관념이 점점 견고히 모습을 빚어갔다.


에피소드들이란 대체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킨 일만 하더라’ (이 문장만으로는 여전히 꼰대 같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기함할 만한 것들이다. 이를 테면, 동의서에 “전부 체크 해오라”시켰더니 ‘동의함’ ‘동의하지 않음’ 모두에 체크해 온 신입 이야기 등이 있다.)나 ‘일도 잘 못하면서 권리 챙기는 건 기똥차게 하더라’ (역시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해할 법도 하다. 회사 문화라는 건 몹시 다양하니까. 그러나 여전히 꼰대 같다.) 등이었다.


나도 주니어들과 일하며 소소한 충격과 섭섭함이 없진 않았다. 키보드 특수문자를 칠 줄 몰라 일일이 복붙하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매번 5분, 10분 늦으면서 퇴근은 1분도 늦지 않고 정각을 야무지게 지키는 모습을 볼 때가 그랬다. ‘임무’보다 ‘권리’가 앞선 행동은 때로 무책임하기도 했다.


하루는 디자인 업무를 맡은 주니어가 수정이 안된 파일을 넘기고 퇴근한 적이 있었다. 퇴근 직전에 보낸 파일을 확인하니 퇴근 시간이 2분 지나 있었다. 그날까지 외주 업체에 넘기기로 했던 터라 고민하다 전화를 걸었다.


“수현 님, 어디세요? 파일에 아까 요청한 내용 반영이 안 됐는데.”

“아, 방금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왔어요. 돌아갈까요?”


짧은 침묵 동안 ‘아 역시 20대구만.’하는 생각이 스쳤다. 말없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괜찮다고, 내일 아침에 와서 수정해달라고 하곤 전화를 끊었다. 웃음이 났다.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치솟았다. 예상할 수 있듯 어이없음이 반이었고, 나머지 반은 재미있게도 통쾌함이었다.


그렇다. 통쾌했다. ‘오늘 보내야 하는 건 내 사정이 아니고, 나는 이미 중대한 퇴근길에 올랐다’는 태도로ㅡ게다가 상대방이 느낄 수밖에 없도록 철철 흘리면서ㅡ겉으로는 매너 있게, 순수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답이 정해진 질문을 내뱉는 당돌함이 그랬다(이마저 귀여웠다고 하면 변태 취급당할까?).


어이없음은 꼰대로서 나의 감정이었지만 통쾌함은 직장 내 모난돌으로서 나의 감정이기도 했다. 직장의 신, 망나니, 비글… 은 20대 시절 직장 선배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사내 규정에 출산 휴가 내용이 없다며 대표실에 쳐들어가 따지던 주니어, 스페인에는 시에스타 문화가 있다며 오후 2시만 되면 30분씩 꼬박꼬박 낮잠을 자던 주니어, 벚꽃철에는 점심마다 몰맥(몰래 맥주)하던 주니어, 밤새워 일한 다음날 12시에 퇴근해 냉면에 소주를 말아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꼬장 부리던 주니어, 일이 많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날에 출근하자는 공지에 다시 대표실에 쳐들어가 재공지를 만든 주니어… 그게 모두 나였으니까.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1. 와 저런 망나니도 (안 잘리고) 회사를 다닌단 말이야? 2. 와 저런 망나니마저도 꼰대가 되는 거야? 대답하자면, 1. 그래서 지금은 안 다닌다. 다행히 잘리진 않았고 내 발로 나왔다. 2. 맞다. 세월이란 무서운 것이다.)


<90년생이 온다>의 주인공은 MZ세대를 애매하게 묶고 있지만, 실제 30대와 20대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나는 이제야 ‘온’ 나의 동료들이 반가웠다. 반갑고 서러웠다. 왜 이제야 온 거야? 그동안 혼자 망나니여서 얼마나 외로웠다고. 세월에 치여 이미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제야 나타나다니.


그러나 그때는 이 복잡한 감정을 소화시키지 못했다. ‘도망친 주니어 디자이너’에 대한 한탄에 동년배 친구들은 “역시 요즘 20대 들이란” “책임감이라고는 없다”며 쯧쯧 혀를 찼다. 나 역시 어이없음을 한 움큼 갖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말이 반 정도는 위로가 되었다.


“내일 가서 한 마디해.”

“말한다고 알아듣겠냐. 안 변해.”

“하긴 말하기도 애매하지. 꼰대 같잖아.”

“아 꼰대 너무 싫어.”


친구들은 위도 아래도 모두 싫다며 치를 떨었다. 졸지에 낀 세대가 된 상태였다. 위로 드글드글한 꼰대들도 싫고, 꼰대가 되기에는 더더욱 싫은 세대. 4~50대와 20대의 불통을 온몸으로 통과시키며 해석해 양쪽을 달래야 하는 세대.


다음날 나는 수현을 회의실로 불렀다. 꼰대처럼 어제 그렇게 가버린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얘기하진 않았다. 대신 지금 네가 얼마나 잘하고 또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안다고 얘기했다. 디자이너와 일한 경험이 많지 않아 정확한 피드백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얘기와 그럼에도 알아서 착착 잘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했다. 회사 프로젝트이기에 나 역시 내가 원하는 걸 다 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게 많아 아쉽지만 그래도 ‘내 꺼’라 생각하고 전념하고 있다고, 마냥 재미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동료끼리 충분히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나도 노력할 테니 같이 노력해보자고, 불편하거나 불만이 생기면 같이 얘기해서 해결해보자고, 나도 출근하기 싫다고, 윗사람한테 불만 짱짱 많다고, 계약직이라고 제대로 대우도 안 해주는 건 백프로 회사 잘못이라고, 다는 아니겠지만 조금은 이해한다고… 어마어마한 꼰대처럼 줄줄 얘기했다.


그렇다. 망나니는 꼰대가 되어도 망나니였다. 꼰대가 되는 건 두려운 일이긴 했지만, 꼰대가 아닌 척하는 게 더 두렵기도 했다. 꼰대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속으로만 꿍얼꿍얼하는 꼰대는 되기 싫었다. 내뱉고 나면 뭐라도 있겠지.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뭐라도 알게 되겠지. 어차피 꼰대는 꼰대. 꼰대가 아닌 척하는 꼰대가 될 건지, 꼰대임을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덜꼰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꼰대가 될 건지, 그 정도는 선택할 수 있잖아?


꼰대의 훈화 말씀을 듣던 수현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죄송하다면서 자신도 작은 불만들을 말하지 못해 감정을 키운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수현에게 휴지를 쥐어주었다(작은 ‘애기’가 파들파들거리면서 울면 너무 귀엽다…).


“위원님, 회사 차리면 안 돼요? 저 그 회사 들어갈래요!”

실컷 울고 난 수현이 언제 그랬냐는 듯 특유의 화사한 눈웃음을 하며 물었다.

“회사 차려도 당신 자리는 없는데.”


에너지 빨리기 전에 후다닥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내 뒤로 수현이 졸졸 쫓아오며 뿌에엥- 했다. 사람한테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건 이들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자리에 앉아 한결 상쾌해진 기분을 느꼈다. 얘기해봤자 소용없다며 나를 말리던 동년배 친구들의 말을 떠올렸다. 아랫사람 말은 들을 생각 없이 자기 말만 줄줄 늘어놓기 바쁜 4~50대 아저씨들을 떠올렸다. 저들도 어떤 시점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말해봤자 소용없다며 대화를 포기했을까? 어쩌면 꼰대는 바로 그 순간 시작되는 게 아닐까?


주니어 시절 나는 망나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면 일단 망나니인 건 사실이었고, 둘째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으며, 셋째 무엇보다 망나니인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낀 세대가 된 시점의 나는 꼰대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면 일단 꼰대인 건 사실이고, 둘째 남들이 어떻게 보든 여전히 상관없으며, 셋째 무엇보다 그나마 덜꼰대가 되려면 꼰대임을 인정하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뭐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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