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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창고 May 24. 2019

서울의 한복판, 도심제조업 축제가 벌어지다

세운-청계-을지로 '도시기술장'에 다녀왔습니다

종로의 한가운데,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세운상가와 을지로 골목 일대에서 도시 축제가 벌어졌다. 도심제조업의 점포 하나하나가 집적된 만큼, 오랜 시간도 함께 축적된 이 곳에서, 다양한 단체와 기획자가 모여서 난장을 벌였다. 상가의 갖가지 고철과 기술, 그리고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예술이 모여 함께 선보이는 ‘도시기술장’을 만들어냈다.


도시기술장에 펼쳐진 플리마켓(왼), 세운상가 내부 점포에 진열된 LED 버튼들(오).


다시 세운의 시작     


청계천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오밀조밀 붙어있는 상가 열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휘황찬란한 LED조명부터 일상 속에서 한 번쯤 본 듯한 금속 부품들, 각종 굵기와 색색의 전선 다발까지. 일반인이라면 이름 모를 생활 속 다양한 부품들의 총집합은 신기해서 시선을 끌었지만, 정보의 턱없는 격차로 문을 두들기기가 쉽지 않았다.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치곤 했다. 아는 사람만 알았던 을지로 상가 거리를 도시기술장이 모든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도시기술장의 중심에는 세운상가가 있다. 유진상가와 함께, 한국 근대 도시건축의 한 획을 그은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 세운상가는 제조업의 쇠퇴와 더불어 도시의 교외화가 이루어지면서 도심 부적격 업종으로 분류되고 오랜 기간 재개발 대상으로 있어왔다. 꽤 오랫동안 전면철거 논의가 있어왔고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상가를 철거하고 도심 내 녹지를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금융위기 및 보상 문제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돼 무산되었다. 그리고 몇십여 년의 기다림 끝에 2014년 도시재생 사업지로 결정되었고 세운상가 일대를 구획하여 부분적으로 재생사업이 시작되고 있다.  

세운상가의 재생 이전(왼)과 이후(오)의 모습. 새로 지어진 엘레베이터가 눈에 띤다.

       

다양한 참여주체


보통 도시재생사업은 한 지역의 쇠퇴한 산업에 대해 새롭게 다른 산업으로 대체를 하거나, 관광지, 문화예술공간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인천의 항만 지역이나 서울 안의 문화비축기지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세운상가 안에는 청년들의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과 서울시립대학 도시 캠퍼스를 유치시켰다. 청계천을지로의 제조업 중심지의 특성을 잘 녹여내 다음 세대와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기존의 원주민인 상인들과 서울시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지원조직인 ‘세운협업지원센터’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이다.     

지하에 위치한 세운캠퍼스 모습. 각종 최첨단 기계와 강의용 책상과 시설이 구비돼있었다.

이 날 열린 도시기술장 내에 다양한 참여 주체를 보아도 특히 거버넌스와 협업체계 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세운상가에 새롭게 들어선 청년 기술 창업팀들과 예술가, 문화기획적 요소가 참여 주체의 주축을 이루었지만, <열린작업장>이라는 스탬프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해 일반 방문객들의 참여도 유도하며, 원주민들의 점포를 활짝 방문객들에게 열어두도록 장치를 해놓았다. 청계을지로 제조업 지구의 동별 점포 리스트와 전화번호부도 선착순으로 스탬프투어를 완수한 이들에게 배포하였다. 이번 도시기술장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장치를 통해 기존의 상인들과 일반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열린작업장 깃발이 달린 점포에는 함께 붙어있는 주의사항에 따라 사장님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일부 점포는 문밖으로 부품들을 내놓아 방문객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였다.
세운상가 바로 옆에 위치한 금속정밀 업체들. 한쪽에는 열린작업장이 붙어있고, 한쪽에는 가공 작업이 한창이다.

서울창고가 만난 열린작업장 ‘탑사운드’와 '대흥정밀’ 사장님들은 이곳 세운상가가 변화한 역사와 본인이 기술을 닦아온 이야기를 자랑스레 소개해주셨다. 탑사운드 사장님은 세운상가 5층 오피스텔에 위치해있었다. 세운상가가 아파트였던 시절에 대해 들려주시고, 역대 시장들의 세운상가 개발 계획이나,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한 비화 등을 술술 들려주셨다. 사무실 공간에서는 각종 메달과 상장이 걸려있고, 작업했던 오디오들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개인 작업실이라고 하기엔 각종 오디오 기기와 곳곳에서 받은 메달과 상장으로 가득한 것이 마치 박물관에 온 듯했다.

'탑사운드' 사무실과 오디오 기기들.

‘대흥정밀’ 사장님은 거대한 정밀 기계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금속품을 가공하는 일을 하고 계셨다. 기계가 돌아가는 큰 소음 속에서도 우리의 질문들에 친절히 답변해주셨다. 이 곳 을지로가 일제시대부터 지어져, 적산가옥 형태를 띤다던지, 이 곳 제조 지구의 장점으로 샘플도 요구에 따라 제작이 가능하고, 각 부품별 공정 과정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사장님의 자부심이 깃든 작업장은 평수는 소박했지만, 그 안에 연결된 세상은 넓었다. 이 일을 매 작업마다 새로운 모양을 깎아내는 것이 재밌어 시작했다는 사장님의 말에 옛 청년 시절이 잠시 비춰보였다.

'대흥정밀'의 가공 중인 기계와 각종 도구와 금속제품들.

또한 골목을 걷다 보면 청년 예술가들이 을지로에 작업장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의 원료, 재료들을 통해 제작한 작품들이 진열되어있기도 했고, 도시기술장을 맞아 그들의 기술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었다. 기술과 예술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낡고 오래된 부품들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장은 을지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을지로에서 구한 재료들을 이용해 제작한 우산 조형물(왼). 을지로 골목에 위치한 디자이너들의 예술공간(오)



모두의 공간으로


도시기술장을 통해 열린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대림상가가 이어진 공중 보행공간은 특히 이번 축제에서 핵심 역할을 하였다. 기술장, 예술장, 오락장, 식품장으로 구성된 플리마켓이 열렸는데, 오락기의 변천사부터 새로운 3D 프린터와 같은 새로운 기술들, 오래된 부품들로 만들어진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작품들, 그리고 이 공간에 어울리는 디자이너들의 레트로한 굿즈들까지. 청계천·을지로·세운상가여서 가능한 장(場)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맘껏 공중 보행로를 거닐면서 중간중간 청계천의 풍경과 도심을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길 거리였다.      

세운상가 공중보행로에서 펼쳐진 플리마켓 예술장.
세운상가 공중보행로에서 펼쳐진 플리마켓 기술장.
세운상가 공중보행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계천 풍경


역동 중인 을지로


그러나 공중 보행로를 거닐며 보이는 풍경이 모두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미 청계을지로 지역 일부에는 재개발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바로 앞에 보이는 판자 지붕의 쌓인 먼지와 갈라진 외벽들만 보아도 이 지역이 상당히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열린 작업장을 찾아 을지로 골목을 돌아다녔을 때 다른 상인분은 우리에게 뭐 하는 거냐, 이런 거 쓸 돈 있으면 가난한 상인들 지원해줘라. 하며 푸념하시는 분도 계셨다.


을지로는 역동 중이다. 아마 지금 서울에서 가장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첨예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일 것이다. 그 논의들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위해 도시기술장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했다. 세운상가 재생을 이끌고 있는 세운협업지원센터와 서울시립대, 서울대학교의 도시 계통 연구진,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에서 주관 및 주최하였다. 자리에는 오랫동안 해당 지역을 연구해 온 전문가, 정책 연구원, 외국의 도심제조업 사례 발표, 그리고 현재 재개발에 반대하는 연대체에서도 참가하며 여러 각도에서 청계천·을지로 지역을 조명하고, 도심제조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논하였다.


2부에서는 포럼 내에서 이루어진 논의들과 더불어, 현재 을지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쟁점들을 짚어보려고 한다. 단순히 레트로와 빈티지의 고장이 아닌, 그 화려한 핫플레이스에 가려진 상인들의 생계 공간으로써 가지는 의의와 역사적 흐름을 함께 돌아볼 것이다. 축제의 현장으로 '도시기술장'을 소개했지만, 이 안에 담긴 내용은 꽤 무겁다. 취재를 다녀온 이후에 더욱 그러했고, 을지로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접근해보려고 한다. 이전까지 서울창고가 기록한 내용들과는 조금 더 진지한 글이 연재될 것 같다.

포럼이 열린 세운홀에 부착된 포스터 이미지
공중보행로에서 보이는 을지로의 낡은 건물들.
세운상가 1층 옆에 모여있는 금속 가공업체들. 세운상가와 골목 사이에 <열린작업장> 가랜드가 걸려있다.


2부에 계속됩니다.



참고  다시세운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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