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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창고 Oct 15. 2019

개포동에 가면

아파트에 가려진 강남의 삶의 모습들


2020년이 다가오니 서울의 강남, 강동의 대단지 아파트들의 재개발, 재건축 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집값을 결정할 시공사와 조합원들이 바쁘게 미래의 조감도를 그려내는가 하면, 또 그곳에서 하나의 세월을 보낸 어떤 이들은 기억의 조각들이 스러지기 전에 담아내기 바쁘다.

   

개포주공 1단지 재건축 현장과 그 너머 시영아파트 재건축으로 지어지고 있는 래미안 아파트


소식을 전해 듣고 강남의 아파트들이 궁금해졌다. ‘강남’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인터넷에 강남과 주공아파트를 검색해보아도 순 재건축과 분양, 매매 정보뿐이다. 아파트를 사는 사람이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것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개포동을 찾았다. 

    

도곡역에 위치한 타워팰리스와 동부센트러빌 아파트 둘 다 2000년 초반에 지어졌다.


도곡역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최고층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서있다. 그리고 맞은편엔 하얀 외벽에 투박한 페인트체로 시공사와 동 숫자가 적혀있는 아파트들. 건설기업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아파트 모양을 구경하며 양재천을 건너 개포동으로 향했다.


개포동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생(life, 生)의 기록이다.


곧게 뻗은 양재천을 주위로 조깅코스가 가지런히 나있다.




1. 학생들이 많다


시험이 끝난 학생들이 줄지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도착한 때는 오후 3시쯤 되었다. 양재천을 지나며 교복 입은 중학생 또래 친구들이 둘, 셋 짝지어 어디론가 향한다. 제각기 재밌는 얘기거리들을 나누며, 투닥투닥 걷는다.


개포고등학교, 구룡중학교, 경기여고 등 학교 이름을 딴 버스 정류장들이 줄지어 있다. 그리고 정류소마다 이어폰을 끼고 문제집을 보는 친구,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강남 8학군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떤 일상을 보낼까 궁금했다. 나도 모르게 보통의 학생과 다르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러나 이곳의 학생들도 똑같은 보통의 학생들이었다. 가족 배경이 어떻고, 금수저고 하더라도 어린 십 대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 말소리, 웃음, 표정들마저 가릴 순 없다. 어떤 곳보다도 푸르른 녹색 배경이 학생들과 잘 어우러지는 개포동이다.



2. 나무가 많다    

 

개포 현대아파트의 숲

숲이 잘 조성되어있다. 새하얀 아파트 숲이 아닌, 푸른 나무숲이 짙게 이어진다. 어딜 가나 나무 그늘이 거리를 드리운다. 단지마다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꽤 높이 치솟았다. 어떻게 보면 울타리 같기도 하다.


나무에 둘러싸인 개포 현대아파트 

가을 햇빛을 받아 나뭇잎들이 반짝인다.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는 동안 적막한 한낮의 공간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로 메운다.     


울창한 숲 속에선 여기가 강남인지, 강원돈지 착각이 든다. 아파트마다 주변에 공원들이 조성되어있고, 양재천과 이어진다. 


처음엔 도시조경법에 따라 인공적으로 조성되었지만, 30년이 넘게 아파트 단지와 역사를 같이하며 그들만의 생태계를 꾸렸다.


양재천을 따라 형성된 숲



3. 오래된 헌책방이 있다     


서적백화점


개포고등학교와 주공아파트 사이 상가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빽빽한 부동산과 학원 간판 틈 사이, 스티커가 다 해진 ‘서적백화점’ 간판이 붙어있다.     



입구로 들어서니, 왜 백화점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단번에 이해가 간다. 입구에서 내려가는 계단까지도 어린이도서 전집들이 빽빽하게 쌓여있다. 계단을 내려오니 넓은 공간 안에 온통 책으로 가득 차있다. 요리조리 다니는 직원들은 마치 가슴께까지 쌓여있는 책바다를 헤엄치는 것 같다.



두껍고 하얀 종이들이 제각기 쌓여 열을 맞춘 학습지, 문제집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바쁘게 책 정리 중인 직원들. 정말 서적백화점이 맞구나. 검색을 해보니, 30년을 넘게 이 동네에 있어왔다.


책을 찾는 것이 직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듯 보였다.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87년부터 말죽거리에 서점을 차리셨다고 한다. 3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부러 오프라인 매장만을 운영하고, 혜택도 더 주려고 한다. 중고서적도 같이 다룬다. 10년, 5년 전 살던 분들이 재입주를 하고 다시 서점을 찾는다고 한다. 또 학생 시절 이곳을 찾던 분들이 꾸준히 찾기도 한다.


'강남'에 대해 형성된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신지 물었더니, 외형적으로 비친 건 그렇지만, 얘기하고 대화하고 보면 서로 이웃끼리 살뜰히도 챙기고 나눈다고 한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여기도 인간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라고 하신다.


주변에 학생들이 이용할 분식집, 문구점이 같이 붙어있다.



4. 시장이 있다     



강남에도 시장이 있다. 미도, 은마, 주공 등등의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주변에 종합상가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데, 개포주공아파트 5-6단지 근처에 상가와 시장의 중간 모습인 '개포시장'이 있다.



상가 건물들이 서로 모여있어, 사거리 골목이 시장의 형태를 띠고 있다. 건물의 절반 이상이 외식 장사를 하고 있고, 사거리의 중심에는 찬거리, 청과물, 수산물, 방앗간 등 식재료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가운데 위치한 부산어묵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또 한쪽에는 부추, 콩나물 등 바구니에 담아 노점 장사하는 할머니 주변에는 다른 아주머니들이 같이 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다. 


4시가 넘어가는 시기, 점차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린 배를 채우러 나온 학생들, 외식하러 손잡고 나온 가족들, 저녁 찬거리 장 보러 나온 주부들. 그리고 최대한 살갑게 그들을 맞이하는 각양각색 점포 주인들. 강남 개포동 오후의 살가운 풍경이다. 


주공아파트와 상가건물




글, 사진  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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