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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창고 Mar 08. 2019

서소문아파트

도심 한복판 살아있는 '동네'

서소문아파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미근동 충정로 6길 59

1개 동(9동으로 구분), 상가 1층 주거 2~7층, 126세대    



하천 모양을 따라 지어진 아파트     


독립문과 영천시장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충정로와 통일로가 만나는 서대문역사거리를 지나게 된다. 그곳을 지날 때면 광활한 8차선 도로와 끝이 보이지 않는 건물 높이, 그리고 그곳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버스와 자동차, 직장인들의 행렬로 늘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통일로 대로변.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이곳에 유진상가, 원일아파트와 동년배인 상가아파트가 있다. 버스 타고 무수히 이 대로를 지났었지만, 그런 건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곳엔 두터운 콘크리트 벽 위에 두꺼운 헤드라인 글씨로 ‘서소문아파트’라 적힌 건물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빛바랜 상아색의 낡아버린 서소문아파트이지만, 그 모양새는 여타의 상가아파트와 달리 폭은 얇고 가로로 기다란 외형으로 유려하였다.

1층엔 상가, 2층부터 7층은 주거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가는 식당, 카페, 슈퍼 다양하다.

의식하고 바라본 서소문아파트는 오른쪽엔 경찰청, 왼쪽엔 농협생명 건물 사이에 야트막하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다른 건물들과 이질적인 외관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9개의 동들이 1개 동으로 휘어져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건물이 휘어져 있는 이유는 바로 건물 밑에 흐르는 하천 때문이다. 대지가 아닌 하천 만초천을 덮고 지어진 건물은 하천의 모양을 따라 곡선으로 휘어있다. 독특한 모양새 탓일까 서소문아파트는 근·현대 문물 보전을 위한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서소문 아파트. 하천의 모양을 따라 곡선 모양이다.


7080 타임슬립 여행     


상가아파트는 주거와 상가 기능을 접합시켜 밀집된 도시의 지리를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책으로 나타났다. 현재 수없이 개발된 도시에서 동네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소문아파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옛 동네가 떠오른다. 용돈 타서 야금야금 사 먹던 구멍가게와 분식집, 늦게까지 동네를 밝히는 세탁소, 밤늦도록 일하고 지친 몸을 달래주는 고깃집 등. 가게들이 한 곳에 모두 모여 있어 아파트 한 바퀴를 돌면 마치 한 마을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서소문 뒷골목 풍경. 오래된 노포들은 기본 30년 넘게 운영한 가게들이다.

특히 7동과 8동 사이 아파트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들어가고 나면, 주변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들로 즐비하다. 그리고 수 십 년을 견뎌온 듯한 바닥 길과 벽면들을 걸으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 통로를 통해 시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 느낌을 받는다. 이 신비로운 느낌은 서소문 건널목 열차 지나가는 '땡-땡-땡-땡-' 소리로 한층 극대화된다.

서소문건널목 풍경

서소문아파트 바로 옆에는 서소문 건널목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양 4 소문의 하나인 서소문을 헐고, 일제는 군사 물자를 나르기 위한 철도를 지었다. 그리고 그 역 중 하나가 서소문역이었다. 서소문역은 현재는 사라지고, 건널목만 남아있다. 전국에서 하루에 가장 많은 열차가 통과하는 건널목으로 횡단보도가 켜지는 주기만큼, 경비원들이 열심히 관리하고 계신다. 정지 신호가 떨어질 때 나는 땡땡 소리는 참 매력적이다. ‘미근동 땡땡거리’라는 명칭까지 붙게 되었다.

서소문 건널목을 건너는 열차는 KTX, 경의중앙선, 새마을호, 화물철도 등으로 다양하다.


삶의 애환이 담긴     


서소문의 역사를 찾아보면 백여 년 전, 서소문 밖은 많은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받았던 공간이다. 문밖은 번영한 시장통으로 으레 처형장으로 활용되었는데, 서소문 밖은 특히 종교인들의 많은 피가 묻혀 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엔 고층 빌딩들과 수많은 직장인들의 터전이 되었다. 빽빽이 하늘을 가리는 빌딩 숲 속, 서소문아파트는 작은 온실 같다.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양분과 숨을 불어넣어주는 꼭 필요한 온실. 하루 동안 지켜보고 있으면, 그것이 자연히 느껴진다. 점심시간 몰려오는 직장인들의 행렬, 저녁에는 삼삼오오 무릴 지어 골목을 터덜 터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딱 맞는 것 같다. 특히 저녁 풍경은 하나 둘 켜지는 등불에 분위기기 색다르다. 이곳에서 그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맛있는 안주와 함께 마음을 달래고 갈까.                  

미근동의 저녁 풍경

도시 곳곳 밀려나는 오래된 골목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가난하던 동네에 문화와 예술이 꽃피우던 길이 어느새 프랜차이즈 상가들로 잠식되기도 하고, 오래도록 그곳을 삶의 전부로 살아온 이들이 더 돈이 되는 건물에 밀려나기도 하고 말이다. 이 곳 서소문아파트와 미근동 땡땡거리는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관은 낡았지만 이래 봬도 지친 현대인에게 한 끼, 한 끼 소중한 양분을 채워주는 우리의 살아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빽빽이 고층 빌딩으로 잠식 중인 이 도시엔 숨통 틔워줄 '동네'가 필요하다.


* 다음주 서울창고 유투브에(프로필 링크) '서소문아파트 브이로그' 영상이 업로드 됩니다.


Editor 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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